인천시 동구에 위치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인천의 오래된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금곡동과 창영동에 대한 1년 간의 도시생활사 조사를 마치고 ‘배다리에서 쇠뿔고개까지 금곡동·창영동’ 보고서를 발간했다.

20일 구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매년 하나의 동을 선정해 옛날 고문서·신문·사진자료 등을 수집, 기초조사를 진행한 후 직접 동네를 찾아 주민들의 심층 조사를 통해 마을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2017년 송림동을 시작으로 2018년 송현동을 조사했으며, 지난해에는 금곡동과 창영동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번에 발간된 금곡동과 창영동 조사보고서에는 과거 우각동부터 형성 및 발전과정, 지명, 배다리와 쇠뿔고개의 옛 기록 등을 찾을 수 있었다. 또 개항과 경술국치, 3·1운동, 6·25전쟁,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의 큰 사건들에서 보이는 보다 집약적이고 미시적인 관점의 지역사를 수집했다. 나아가 이곳에 살았던 혹은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이곳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이번 조사의 큰 성과는 1880년대부터 쇠뿔고개를 지칭하는 오래된 지명을 공문서·지도·신문 등에서 찾은 것이었다. 개항기의 공문서인 ‘인천항안(규장각 소장)’을 통해 쇠뿔고개 마을이 조성시기를 1896년경으로 한정·발견했는데, 동구의 조선인 마을 형성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개항초기 조계지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그곳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옛 우각동(현재의 금곡동·창영동), 송현동과 만석동 등지로 이주터를 찾은 과정이 ‘인천항안’의 인천부 관찰사였던 박세환의 보고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지금의 창영동은 개항기에 인천 조선인 근대교육의 중심지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인천 3·1운동의 시발지였다. 보고서에서도 3·1운동의 100주년을 기념해 근대 교육과 민족운동의 산실이었던 이 지역을 조망했다. 아울러 금곡동과 창영동 사람들의 삶과 공간을 주거와 상업·교육·종교·문화예술의 공간으로 구분해 문헌·신문·사진 등의 실물자료와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서술했다.

구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인천 동구에 마을이 형성된 과정을 개항기 공문서에서 찾을 수 있어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유탁 기자 cyt@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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