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간된 금곡동과 창영동 조사보고서에는 과거 우각동부터 형성 및 발전과정, 지명, 배다리와 쇠뿔고개의 옛 기록 등을 찾을 수 있었다. 또 개항과 경술국치, 3·1운동, 6·25전쟁,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의 큰 사건들에서 보이는 보다 집약적이고 미시적인 관점의 지역사를 수집했다. 나아가 이곳에 살았던 혹은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이곳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이번 조사의 큰 성과는 1880년대부터 쇠뿔고개를 지칭하는 오래된 지명을 공문서·지도·신문 등에서 찾은 것이었다. 개항기의 공문서인 ‘인천항안(규장각 소장)’을 통해 쇠뿔고개 마을이 조성시기를 1896년경으로 한정·발견했는데, 동구의 조선인 마을 형성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개항초기 조계지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그곳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옛 우각동(현재의 금곡동·창영동), 송현동과 만석동 등지로 이주터를 찾은 과정이 ‘인천항안’의 인천부 관찰사였던 박세환의 보고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지금의 창영동은 개항기에 인천 조선인 근대교육의 중심지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인천 3·1운동의 시발지였다. 보고서에서도 3·1운동의 100주년을 기념해 근대 교육과 민족운동의 산실이었던 이 지역을 조망했다. 아울러 금곡동과 창영동 사람들의 삶과 공간을 주거와 상업·교육·종교·문화예술의 공간으로 구분해 문헌·신문·사진 등의 실물자료와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서술했다.
구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인천 동구에 마을이 형성된 과정을 개항기 공문서에서 찾을 수 있어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유탁 기자 cyt@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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