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용 인천지방법무사회 정보화위원
이기용 인천지방법무사회 정보화위원

"형님, 사촌 여동생이 딸아이 나이를 정정하려고 했나 봐요. 그런데 법원에서 불허가 됐대요."

10년 전이었다. 후배의 사촌 여동생 A의 나이는 삼십대 초반. 함께 온 다섯 살 딸 B는 내가 준 무설탕 캔디를 입에 넣고 볼을 볼록하게 만들어 보이며 예쁘게 웃었다. A는 이십대 초반에 C를 만나 곧 혼인했으나 몇 년 후 생활고와 성격 차이로 별거에 들어갔다.

각자 대구와 인천에서 지내며 수년간 별거하던 중 A는 유부남 D를 만났고 C와 이혼을 진행하는 중에 D와의 사이에서 B를 임신했다. A는 C와 이혼 한 달 후 B를 출산했지만 1년 후 신고일을 출생일로 하여 자신의 혼외자로 출생신고를 했다. D를 B의 아빠로 신고할 수 없다고 C를 B의 아빠가 되게 할 마음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2년이 더 지나 A와 D는 혼인했고, D는  B를 자신의 친자로 인지해 B가 D의 성을 따를 수 있게 했다. B는 가족관계등록부상의 나이가 실제보다 한 살 적어서 유치원에 갈 수 없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B는 1년 동생들과 학급편성이 됐다. A는 B의 나이를 정정해서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 했다. B의 출생연월일이 실제와 같이 정정되면 민법 제844조에 의해 B가 C의 친생자로 추정되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당시 선례는 친자관계에 관한 재판 없이 곧바로 법원의 허가를 통해 출생연월일을 정정하는 것에 대해 불허했다. 

A가 다른 곳에서 의뢰했던 정정허가 신청이 불허된 이유였다. 

나는 A와 D가 B를 대리해 C에 대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판결을 받은 후 B의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허가를 받도록 했다.

얼마 후 나의 후배로부터 A와 D가 B를 유치원에 보낼 수 있게 돼 고맙다는 전화를 받고 나도 매우 기뻤다. 

2년 후 2012년 대법원은 유사한 사안에서 위 선례와 같은 취지로 정정 허가신청을 불허한 원심판결을 "가족관계등록부상의 출생연월일이 정정됐다는 사정만으로 친생 추정의 효력이 미치는 등 신분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으므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을 불허할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파기해 친자관계에 관한 재판 없이 출생연월일정정 허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판결 이유는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점이 있지만, 현실적 고민이 있었을 대법원의 그 결론에는 공감한다. 

그리고 2015년 헌법재판소는 민법 제844조가 "혼인 종료 후 300일 내에 출생한 자녀가 전남편의 친생자가 아님이 명백하고, 전남편이 친생 추정을 원하지도 않으며, 생부가 그 자를 인지하려는 경우에도, 그 자녀는 전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돼 가족관계등록부에 전남편의 친생자로 등록되고, 이는 엄격한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서만 번복될 수 있다.

그 결과 이혼한 모와 전남편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데 부담이 되고, 자녀와 생부가 진실한 혈연관계를 회복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고, 이에 따라 민법이 개정돼 2018년 2월 1일부터 출생신고 전에 친생추정을 배제할 수 있는 ‘친생부인의 허가 청구’와 ‘인지의 허가 청구’제도가 시행됐다.

이제 B의 실제 출생일로 A는 C가 B의 아빠로 기록되지 않게 출생신고할 수 있고, D도 B를 자신의 친자로 출생신고할 수 있는 비송절차적 방법이 생긴 것이다.

사회의 발전과 변화로 법과 제도가 현실과 괴리되고 이로 인해 오히려 불법이 유발되고 기본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차이를 줄이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오지 않았나? 

물론 그 노력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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