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부총장
이선신 농협대학교 부총장

지난 1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연두 업무보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공기관 보수체계 개선 방향을 보고했다. 골자는 공공기관 호봉제 폐지 및 직무급제 도입이다. 13일에는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 확산 지원 방향’을 발표했다. 직무급제는 ‘직무의 가치’에 따라 임금을 차등지급하는 방식이다. 높은 가치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낮은 가치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보다 많은 임금을 받도록 하는 것은 정의의 관념에 부합된다. 흔히 직무급제는 ‘동일노동·동일임금’을 구현함으로써 노동시장의 생산성을 높여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평가되며, 많은 선진국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고령화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호봉제를 내용으로 하는 연공급제를 직무급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어느 중학교의 구내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나는 종일 힘들게 일하는데, 별로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 교장선생님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다. 너무 불공정한 것 아닌가?"라면서 불만을 토로하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아주머니에게 직무 가치의 차이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일반교사의 직무 가치를 어떻게 비교평가하고 차등할 것인지의 문제도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교사의 직무 가치, 군인의 직무 가치, 의사의 직무 가치, 기자의 직무 가치, 119소방대원의 직무 가치, 금융업·유통업·건설업 등 다양한 업종·직종의 일반 회사원의 직무 가치를 어떻게 비교평가하고 차등할 것인가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직무 가치가 사회변화에 따라 변동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어떻게 반영할지도 어려운 문제이다. 어설프게 직무급제를 시행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만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일반적으로 임금체계는 연공급·직무급·직능급·성과급 등으로 나뉘어지는데 우리나라의 임금체계는 종래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연공급이 주류를 이뤄왔다. 단지 근무기간이 오래됐다고 해서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공급제가 전적으로 불합리한 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연공이 높은 자가 연공이 낮은 자보다 직무 가치가 높은 일을 수행하고, 직능 수준도 높으며, 성과 수준도 높기 때문이다. 또 연공급제가 직무급제·직능급제·성과급제보다 더 적합한 업종과 직종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직무급제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모든 업종·직종에 최선의 임금체계가 될 수는 없다. 독일 등 직무급제가 자리 잡은 나라를 보면 오랜 시간에 걸쳐 노사 간에 산업별 임금교섭 방식이 형성돼 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단기간 내에 획일적으로 모든 분야에 직무급제를 도입하기 위해 과욕을 부리지 말고, 임금체계의 전환을 기본적으로 노사의 자치에 맡기되, 산업별 임금교섭 방식 확대 등 노동시장의 환경변화에 먼저 주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금체계의 변화를 주도하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 범정부적으로 추진했던 ‘성과연봉제’가 사회적 갈등과 파문만 일으키고 실패했던 잘못을 되돌아봐야 한다. 직무급제를 도입하려면 공공기관·사기업에 앞서서 공무원부터 먼저 시행하라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 장관, 고위 공무원, 일반 공무원들의 직무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차등할 것이며, 사기업 임직원의 직무 가치와 대비해 어떻게 평가하고 차등할 것인가. 대통령은 2억3천91만 원, 국무총리는 1억7천902만 원, 장관은 1억3천164만 원의 연봉을 받으며, 검찰총장은 내년부터 처음으로 1억 원을 넘는 연봉(1억18만 원)을 받게 된다. 또한, 상당수 공·사기업과 금융기관 임원들은 수억 원 내지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월 200만 원 이하의 임금근로자 비중은 34%에 달한다. 이들 사례는 과연 각 직무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반영한 것일까? 잘 모르겠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