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자 인천아카데미 이사장
최순자 인천아카데미 이사장

오래전, 사회주의 동구권이 붕괴된 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막 이동하던 시절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 적이 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젊은 종업원이 주문은 안 받고 자기들끼리 떠들기만 했다. 그때 동행한 동료가 한 말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근로자는 자기 일은 게을리하면서 균등한 분배만 요구한다. 사회주의가 쇠퇴하고 국민의 삶을 더 황폐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일은 게을리하면서 주기만을 바라는 결과라 했다. 

최근 어느 국가 연구기관에서 발생한 내용이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연구기관들은 현 정부도, 이전 정부도, 이 직전 정부도 기관장의 리더십보다는 그 정부와 색깔이 비슷한 사람을 임명해왔다. 균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외친 현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소위 진보 성향의 원장이 부임한 후 소통의 자리가 있었다. 젊은 연구원들은 대부분의 보직과 대형 연구 프로젝트 팀장이 시니어 연구원들로 이루어졌음을 불평하면서 그들(젊은 연구원)에게 보직을 달라고 요청했다. 원장은 불평의 핵심에 있는 젊은 연구원들에게 상당수 보직과 프로젝트 팀장을 맡겼다. 

그러나 1년이 채 안돼 보직과 팀장을 맡았던 젊은 연구원들이 하나둘씩 사의를 표했다. 이유인즉슨 일이 너무 힘들어 감당하기 어렵고, 전에 그들이 즐기던 개인 시간을 침범하므로 못하겠다는 것이다. 시니어 연구원들이 맡아 하던 보직에만 눈독이 갔을 뿐, 그 안에 얼마나 피나는 노력과 내공이 곁들여 있는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결국 원장은 진퇴양난에 빠져 다시 시니어 연구원들을 설득 중에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사립 기관의 10여 명 팀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팀장이 팀원들에게 어떤 내용의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한 팀원이 "팀장님, 이 일을 하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가요? 돌아오는 것도 없는데 왜 우리가 힘들게 이 일을 해야 하나요?"라고 문의했단다. 남의 떡이 크니 똑같이 나눠 달라는 사람들. 대가를 따지면서 일에 임하는 사람들.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고 듣는 실상이다. 

현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을 지불했다. 만 18~34세이면서 졸업하거나 중퇴 후 2년 이내인 미취업 청년들에게 취업 준비에 필요한 비용을 6개월간 월 50만 원씩 최대 300만 원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 사업효과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이용건수의 74%가 밥 먹고, 인터넷이나 점포에서 물건을 사는데 사용됐다 했다. 때에 따라서 특정 지원금이 배고프면 밥을 사먹을 수도,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구직활동에 지급한 국민 세금이 엉뚱한데 사용된 것이다. 정작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이지 주머니에 넣어주는 몇 푼의 현금 지원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바라는 ‘좋은 일자리’란 정부의 미래지향적 산업정책이 우선이지만, 개인 또한 이 세상 어떤 일도 공짜가 아니라 피나는 노력과 수많은 시행착오에서 얻어짐을 새겨야 한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란 격언이 있다. 끊임없는 노력이나 결과에 상응하는 힘든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 좋은 결과만을 기대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현 정부의 정책이 자칫 젊은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가 아니라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공짜 점심이 있으니 우선순위로 타 먹어라’로 비쳐지는 것은 아닐지 싶다.

인류역사에서 부의 불평등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무거운 주제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도 사회주의 국가도, 잘 사는 나라도 못사는 나라도, 과거 정부도 현 정부도 노력했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 아마 영원히 해결될 수 없으나 그 차이를 줄이는 과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정부가 펼치는 영혼 없는 정책이 자칫 20대 청년들에게 ‘공짜 점심이나 받아먹어라’로 굳어져 더 무기력하고 경쟁력을 상실한 채 30~50대의 장년기를 살아갈까봐 심히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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