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코로나19’ 확진 환자 수가 3천 명을 훌쩍 넘어섰고, 시민들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며, 텅 빈 식당과 한산한 길거리 모습은 국란(國亂)임을 보여준다. 대구의 병원들은 확진 환자로 넘쳐나며 중증도에 따라 입원이 가능하다. 전국 공중보건의와 의료진들이 대구로 몰려들고 방호복이 모자라 마스크와 흰 가운을 입고 환자를 돌봐야 할 처지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정치권은 중국에 마스크와 방호복을 이미 10만 개나 넘겨줬다. 

‘코로나19’에 대한 대통령의 말("머지않아 종식될 것")을 믿었던 국민들은 이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나서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중국인 때문이 아니라 중국에 갔다가 감염돼 들어오는 한국인이 더 큰 원인이라고 국민 탓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막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인류의 역사는 말해준다. 서양에서 페스트는 14세기 후반 유럽 인구의 30%를 감소시켜 놓았다. 페스트도 중국에서 발원해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흑해연안을 거쳐 마르세이유에 들어왔고, 서양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페스트는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인간에게 내린 하나님의 징벌이라 여겨 채찍으로 자학(自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페스트는 내가 아닌 타자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내린 징벌이라 여긴 사람들은 희생양을 만들어 냈다. 유대인들이 우물을 오염시켜 페스트가 창궐한다고 믿고 싶었던 사람들은 1348년 프랑스 스트라스브르에서 그들을 900명 이상 때려죽이거나 산 채로 불태워 죽였다. 신천지 교도를 탓하기 앞서 적기(適期)에 ‘코로나19’를 막지 못한 정부는 스스로를 힐책하는 것이 더 도덕적이다.

우한 같은 곳이 봉쇄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작가의 상상력을 빌려 그 군상(群像)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베르트 카뮈는 중국의 우한처럼 외부와 단절된 알제리 ‘오랑’이라는 해안도시를 배경으로 1947년 「페스트」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오랑에서 재앙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행동 양태를 그는 소상하게 그려냈다. 페스트가 발생하자 시당국에 빠른 조치를 요구하고 환자를 적극 치료하는 젊은 의사 리외, 이웃이 죽어 나가는데도 불법을 자행해서 큰돈을 버는 코타르. 신문기자로 이곳에 잠시 왔던 랑베르는 자신은 이곳과 관련이 없다며 그곳을 벗어나고자 갖은 애를 쓴다. 

오랑 시 공무원이며 페스트 퇴치와 보건대 활동에 최선을 다하는 그랑. 사람들이 그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묻자 페스트가 발생했으니 당장 소멸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쿨한 대답이다. 먼저 바이러스에 대한 철저한 방역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카뮈 생각의 투영이리라.

파늘루라는 신부는 설교를 통해 오늘의 페스트는 인간들이 죄를 지으며 회개하지 않아 신이 내린 징벌이라고 말한다.

"신천지가 급성장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마귀의 짓"이라고 말하는 신천지 교주의 주장은 파늘루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병을 고치고 신비함을 보여주는 것은 종교의 본질이 아니다. 종교는 사후세계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부활과 영생을 약속하고 있다. 이를 빙자해 세속의 일에 신을 자주 불러들이고 재물을 요구하는 사이비 종교의 행위는 ‘독신(瀆神: blasphemy)’일 뿐이다. 

그랑의 말처럼 역병이 발생하면 그것을 막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지 정치적 판단으로 방역의 적기를 놓쳐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1573년 율곡이 선조에게 올렸던 상소문 "후부일 심지대하 기국비국(朽腐日 深之大厦 其國非國: 나날이 더 깊이 썩어가는 빈집 같은 이 나라는 지금 나라가 아닙니다)"의 탄식(歎息)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 무능한(incompetent) 정권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내몰린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는 있을까? 

제대를 한 달 앞둔 어느 공중보건의는 내일 대구로 환자를 돌보러 간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그의 모습은 오랑의 한계상황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리외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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