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자 4천812명 사망자 28명’, ‘코로나 확진 600명 더 총 4812명… 대구·경북서만 580명 추가’…….

3일 포털사이트에 노출된 코로나19 관련 기사들의 제목이다. 마치 올림픽 메달 집계현황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다. 심지어 몇몇 언론사는 ‘드디어’, ‘마침내’라는 부사까지 동원해 학수고대라도 한 양 확진자 수 알리기에 열을 올린다. 실제 의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기하급수’라는 단어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공포’와 ‘전쟁’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지도 오래다. 

 물론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숨긴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지만, 숨겨서도 안된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문제는 확진자 수를 보도하면서 단순히 ‘증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국민들에게 불안감만 심어준다는 데 있다. 

 몇 명을 검사했는데 그 중에 몇 명이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아 확진자는 모두 몇 명이 됐다는 식의 구체적인 상황 설명이 뒷전으로 밀리다 보니 국민들이 현 사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느낌이다.

이러다가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언론과 정치권이 인위적으로 퍼뜨린 ‘공포 바이러스’로 인해 나라경제가 곤두박질 칠 지경이다. 언론과 정치권에 요구되는 건 무엇보다 중립적이고 냉정한 용어의 선택이다. 공포팔이의 주범으로 지목받을 ‘짓’은 삼가야 한다.

 행군하는 군인들은 다리를 건널 때 발을 맞추지 않는다. 발을 맞춰 걸으면 자칫 멀쩡하던 다리가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1831년 맨체스터 근교의 브로스턴 다리는 행군하는 군인들이 지나가자마자 거짓말처럼 무너져내렸다. 

 이 같은 현상을 ‘공명’, 또는 ‘껴울림’이라고 한다. 군인들의 행군으로 만들어진 ‘외부 진동수’가 다리 고유의 진동수와 같아지면서 껴울림 현상으로 인해 다리의 진폭이 커졌고, 결국 붕괴됐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다리 앞에 서 있다. 구성원 전체가 불안감에 사로잡혀 ‘사회적 거리두기’니 뭐니 하며 하나같이 발을 맞춘다면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걸음걸이로 다리를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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