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재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정연재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가히 충격의 연속이다. 우리가 주로 경험했던 재난이 일회적이고 일시적이었다면, 바이러스 폭풍에 비견되는 코로나19는 재난 상황의 기약 없는 반복과 예측불가능한 확장을 특징으로 한다. 

우리의 일상적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있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전대미문의 재난으로 각인될 것이 분명하다. 보통의 자연재난은 재난을 겪은 자와 겪지 않은 자 간의 상호 공감과 연대로 복구의 동력을 확보하지만, 이번 코로나19는 사람들 간에 혐오와 배척이라는 감정을 증폭시켜 와해된 공동체의 복원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철저히 적으로 만드는 사회적 재난의 선봉격인 셈이다. 스티븐 호킹이나 빌 게이츠가 인류가 직면하게 될 가장 큰 위협으로 왜 ‘팬데믹(pandemic, 전염병 대유행)’을 꼽고 있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첨단 과학기술 시대를 사는 인간보다 더 똑똑한 바이러스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그 위협의 빈도가 점점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은 이번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모든 재난이 그렇듯이 이번 코로나19 역시 우리에게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일례로 환자 치료의 현장에서 밤낮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의 헌신 속에서 "우리가 대구다"를 외치며 위기극복을 위해 온정의 손길을 펼치는 시민들의 마음에서 무엇보다 바이러스를 대처하는 대구시민의 품격 있는 자세에서 커다란 희망의 싹을 본다. 

그러나 자기비움의 정신을 망각한 채 종교를 욕망 실현의 수단으로 치부하는 집단에게서 깊은 탄식과 절망을 본다. 모든 종교는 더 나은 세상을 간절히 꿈꾼다는 점에서 전복적이다. 그러나 그 전복의 시도가 상식과 일상에서 벗어날 때 독선과 광기만이 남는다. 종교가 건강성을 상실할 때, 결국 선한 영향력의 진원지가 아니라 유해한 바이러스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은 역사가 증명한다.

이번 바이러스 사태는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정치·경제·문화·종교·교육 등 전 분야에서 오랫동안 익숙했던 패턴과 관행에 엄청난 균열이 생길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들이 견지해 온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도 큰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결국 관건은 별(astro)이 사라진(dis) 폐허의 자리(disaster)에, 그리고 극도로 황폐화된 우리들의 정신에 어떤 이정표와 가치를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흔들릴 때 깊은 성찰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기본적인 삶의 자세다. 이번 사태는 궁극적으로 우리들 삶의 태도와 방식과 연관돼 있기에 가치관에 대한 일대 전환을 요구한다. 치열한 자기 반성과 변화가 전제돼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선 우리는 외형적 성장과 풍요를 향해 질주해 온 경박한 삶에 문제가 있음을 고백하고, 삶의 허세와 거품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바이러스가 남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상처와 균열을 공존과 상생의 문화로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는 일상의 삶에서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우쳐줬으며 우리 인간이야말로 철두철미하게 관계적 존재임을 환기시켰다. 

결국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사회에서 바이러스 대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대안적 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위험과 기회, 즉 위기(危機)는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상반된 결과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이중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이번 바이러스 사태를 인간적 성숙의 기회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독일의 시인 횔덜린의 말은 그래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의 힘도 함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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