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총장(직무대행)
이선신 농협대학교 총장(직무대행)

"힘든 이 상황도 이내 지나가리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하에서 공포와 불안에 빠진 시민들이 자신과 주변인들에게 던지는 위로의 말이다. 실제로 국민들은 우울증, 불안감 등 심한 정신적 고통마저 겪고 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나올 만한, 일찍이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비상 상황이다. 정부는 대책 마련과 시행에 동분서주하고 있고, 공·사단체와 개인들도 코로나19 감염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인력·병실 부족, 마스크 부족 등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추경 편성 추진, 긴급 의료인력·의료시설 확보, 마스크 배급제(5부제) 등 긴급대책을 시행 중이며, 현재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미증유의 위기상황에 대체로 잘 대처하고 있다는 국내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드라이브 스루(Rrive-thru) 방식의 검체 채취 ▶1일 1만7천 건에 달하는 검사 건수 ▶위성항법장치(GPS) 정보를 활용한 역학조사 등에 대해서는 선진국들도 모범적 대처 방안으로 인정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등 조금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혀 안심할 상황은 아니며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여러 가지 법적 논란도 제기됐다. 이른바 ‘대구 봉쇄’ 발언에서 비롯된 법적 정당성 논란, 혐오 발언에 대한 불법 논란(명예훼손죄 등), 코로나19 환자 동선 공개와 관련한 사생활 침해 논란, 검진 거부 및 도피자에 대한 강제 검진 적정성, 신천지 예수교에 대한 강제 수사 촉구, 종교집회 금지 명령,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50만 원 내지 100만 원) 제공 등이다. 이 과정에서 ‘긴급명령권’ 발동을 촉구하는 발언도 나왔다. 지난 2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발동해 3천 병상을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다음 날 "법적 검토가 부족했다"며 사과했다. 

그런데, 같은 날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대통령은 현 상황을 준(準) 전시상태로 규정하고, 경증환자 집중 관리가 가능한 병리시설 확보와 의료 인력과 장비의 집중 투입을 위해 헌법과 감염관리법상 긴급명령권을 즉각 발동하라"고 요구했다. 이 발언은 곧 비판에 직면했다. 왜냐하면, 우리 헌법 제76조 제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에 있어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가 불가능한 때에 한해 법률의 효력을 갖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현재 상황은 긴급명령권 발동요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가 출신인 황교안 대표가 법적 검토도 없이 긴급명령권 발동을 요구한 것은 경솔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편, 긴급 재정경제 명령권 발동을 촉구하는 주장도 있다. 헌법 제76조 제1항은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해 법률의 효력을 갖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생각건대, 긴급명령권·긴급 재정경제 명령권은 헌법상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발동돼야 한다. 우리 국민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긴급조치’라는 이름하에 기본권을 침해당했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가급적 ‘일반적 법률 유보에 의한 기본권 제한’을 활용해야 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법률로서 제한할 수 있다(헌법 제37조 제2항). 그러므로, 국가는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여러 비상 상황에 대비해 각종 입법적·행정적 대책을 미리 세워둬야 한다. 코로나19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후 그 경험을 토대로 정부·국회가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전반적 검토에 착수해야 한다. 지난해 입법이 무산됐던 ‘공공의료대학 설립법’도 시급히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비상 상황하에서도 법치주의가 온전히 작동하도록 상시 준비해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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