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조순<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경제학박사>
임조순<인천시의회 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경제학박사>

경제성장률은 국민국가의 경제상황을 평가하는 지표로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9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9%로 하향 조정하고 정부 당국자가 당초 성장률 목표 2.4%를 달성하기가 어려워 경제가 엄중한 상황이라고 말하는 등 경제성장률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제현실을 단순화시켜 설명하는 수단으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처럼 무심코 받아들이고 있는 경제성장률이 실제로 인류의 경제활동을 제대로 그리고 잘 반영하고 있는지 한 번쯤 의문을 품어보면 어떨까! 더 나아가 누군가 경제성장률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행복해지는 걸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어떤 답을 해야 할까? 

 경제성장률은 전년도의 실질국민소득 대비 기준년도의 실질국민소득의 증가분을 갖고 구한다. 무디스가 예측한 대로 설명하자면 2020년 한국의 실질국민소득은 2019년보다 1.9%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 미국의회의 의뢰를 받은 쿠즈네츠가 개발하고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국민소득 개념은 1970년대 이후 삶의 질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 오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생산량만 늘리면 국민소득에 반영되기 때문에 살상무기 생산이나 환경파괴를 통한 지구에 대한 무차별적 개발 등 인류에게 재앙이 될 수 있는 나쁜 생산도 경제성장률에 포함된다는 이유에서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경제성장률은 자유와 평등의 확장이라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본질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지구 공동체의 목표에 반하는 활동도 긍정적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와 같은 생산 중심의 반쪽짜리 경제지표를 근거로 한 성장률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OECD 국가의 성장률은 이미 2% 내외로 지난 세기에 비해 저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2014년 OECD는 2060년까지 독일, 프랑스, 일본, 스페인 등의 성장률이 0~1%로 떨어질 것이라는 장기 전망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OECD는 이 정도의 성장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두 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사실은 은폐했다.  

 국민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성장률에 대한 대안으로 국민행복지수, 인간개발지수, 더 나은 삶 지수 등의 다양한 지표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GDP를 대체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2008년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 제안으로 국민소득이 아닌 사회발전을 더 잘 나타낼 수 있는 지표를 만들어줄 ‘경제실적과 사회 진보의 계측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됐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한 이 위원회에서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GDP 중심의 경제 계획은 과도한 성장을 부추겨 환경을 파괴하고 건강이나 즐거움 등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을 측정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각 국가에서는 건강, 교육, 정치 참여와 거버넌스, 사회적 연결과 관계, 환경과 불안정성 등을 측정해 발표하라고 권고했다. 이처럼 인류는 생산 중심의 경제성장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경제성장 없이 빈곤을 종식시킨 나라는 없다." 또한 "경제성장으로 생태 악화를 종식시킨 나라도 없다." 위의 글귀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GDP 성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사회적 기초의 확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케이트 레위워스(Kate Raworth)라는 경제학자의 말이다. 물, 식량, 보건, 교육, 소득과 일자리, 사회적 공평함, 정치적 발언권, 평화와 정의 등이 그가 말하는 사회적 기초이다. 산업혁명 이후 경제성장은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경제성장률을 몇 %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GDP가 올라가는지 멈춰있는지에 관계없이 인류 번영을 추구하는 경제를 설계해야 한다. 지구 한편에서는 생산이 넘쳐나지만 다른 쪽에서는 굶주림과 질병,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전쟁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은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회적 가치와 지구적 가치의 성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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