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병마 고통에도 혼신의 저술… 조선 뛰어넘은 대학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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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병마 고통에도 혼신의 저술… 조선 뛰어넘은 대학자로
2.끝까지 학문을 놓지 마라, 민족의 사표 정약용
  • 조한재 기자
  • 승인 2020.03.17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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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선생은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의 저술을 남긴 우리나라 대표 학자다. 개인 저작으로 동양 최대이며, 분량뿐만 아니라 수준에 있어서도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정약용 초상화.(장우석 화백)
정약용 초상화.(장우석 화백)

# 슬픔과 역경을 책으로 이기다

정약용은 4세부터 글을 배워 7세 때 첫 작품을 짓기 시작했다. 10세에 첫 문집 「삼미자집(三眉子集)」을 만들었다.

사랑하던 어머니를 9세에 잃고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소리 내어 책을 읽고 글 짓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지은 글을 쌓으니 자신의 키만큼이나 돼 이룬 결과였다.(정규영, 「사암선생년보」 중에서)

정약용의 저술 초고는 유배시절 많이 이뤄졌다. 

유배생활은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입술 타고 입은 이미 말랐고, 혀도 갈라지고 목도 다 쉬었네, 내 마음 아무도 아는 자 없네…’(‘근심이 찾아드네’ 중에서)

유배지에서의 정약용을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생활고와 신병의 고통뿐이었다. 학문을 토론할 수 있는 문장을 갖추거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세상 물정을 조금 아는 사람이다 싶으면 유배객인 정약용과 어울리기를 꺼려 했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황상이 가려뽑아 놓은 총서인 치원총서.(다산박물관 소장)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황상이 가려뽑아 놓은 총서인 치원총서.(다산박물관 소장)

#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전환하다

올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유배지의 하루하루, 정약용은 원망과 절망으로만 세월을 보낼 수 없었다. 유배의 고통을 희망의 기회로 바꾸기로 했다. 

‘이 세상 걸림돌을 하나하나 세어 보면, 처자식이 최고 걸림돌이지, 누가 알랴 집을 나온 자는, 이렇게 호탕하게 놀 수 있는 있네.’(‘걱정을 삭이며’ 중에서)

정약용 역시 가족 걱정뿐이었지만 사람들은 처자식 때문에 자기 마음껏 해 보고 싶은 것을 못하는데 유배 덕에 책을 제대로 읽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이자 진정한 선비로 살게 하는 하늘의 선물이라고 생각을 전환했다. 고난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역발상이었다. 

정약용은 ‘극의근력(極意勤力, 성의를 다하고 부지런히 힘을 쓰라)’으로 책을 읽고, 책을 베꼈다. 선을 즐기고 앞으로 전진하려는 ‘뜻’을 세우고, 제자들과 격쟁적으로 토론하고 함께 정립한 논지들을 저술로 정리했다. 

# 깨달음의 과정으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

해배(귀양을 풀어줌) 이후 고향 마현(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으로 돌아온 정약용의 학문은 완성의 과정이었다. 정약용은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또 고치고 보완하고 또 보완하는 것에 주력했다.

최근 정약용이 노년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 주는 실증적 자료가 발견됐다. 돌아가시기 2년 전인 1834년께니 그의 나이 73세 만년에 쓰여진 편지들이다.

이 편지는 전국에 가뭄이 들고 전염병이 돌아 민심이 흉흉할 때도, 사랑스러운 어린 손녀를 천연두로 잃고 형수가 병이 들고 자신도 병마와 싸우느라 고통을 겪으면서도, 책상 위에서 책을 거둔 적이 없는 정약용을 짐작하게 한다.

점 하나, 획 하나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완성하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연구와 저술을 그만두지 않았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붓을 잡고 책을 펼친 이유는 무엇인가?

강진해안지도. 이 지도는 정약용이 유배갔던 강진과 그 해안을 그린 지도이다.(개인소장)
강진해안지도. 이 지도는 정약용이 유배갔던 강진과 그 해안을 그린 지도이다.(개인소장)

‘「지원록(知遠錄, 정약용이 「서경」의 난해한 부분을 풀이한 책)」 중에 불손한 말이 많아 빼 버리고자 이 일을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새로 터득한 것이 매우 많으니 그저 책을 읽는 것은 무익하고 반드시 저서를 한 이후에 소득이 있음을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知遠錄中, 多不遜語意, 欲刪之故始此役, 因此新得者甚多, 始知看書無益, 必著書而後, 乃有得也.’(정약용, ‘송애에 보내는 편지’ 중에서)

정약용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이나 잘잘못을 이해하는 데 그치는 ‘간서(看書, 책을 읽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진정으로 터득하기 위한 ‘저서(著書, 책을 짓는 것)’까지 해야 한다고 봤다.

학문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서 시작해 왜곡되고, 바르지 않고, 잘못돼 선입견과 편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을 바로잡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노년까지 그가 연구를 멈추지 않은 이유다.

다산초당도. 정약용의 강진 유배지 정경을 초의가 그린 그림.(개인소장)
다산초당도. 정약용의 강진 유배지 정경을 초의가 그린 그림.(개인소장)

# 묻고 또 묻고 고치고 또 고치다

정약용은 열정적인 연구로 얻어진 결과물은 여러 학자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당색이 다르고 학문적 견해가 다른 신작, 김매순, 홍석주 등에게도 물었다. 심지어 둘째 아들과 나이가 같은 추사 김정희에게 묻기까지 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자신의 저술을 수정했다.

김매순은 ‘온갖 잡초가 우거져 있는 우리나라의 학술에 뛰어난 성과’라고 평가했고(김매순 「대산집」 중에서), 홍석주는 ‘근세의 문인 가운데 열수(洌水, 정약용)와 추사(秋史, 김정희) 등이 가장 박학하다’라고 했다(홍한주, 「지수염필(智水拈筆)」 중에서). 

홍길주는 정약용이 죽자 ‘열수의 죽음은 수만 권 서고가 무너지는 것이다(洌水死, 數萬卷書庫, 頹矣)’라고 하며 탄식했다(「지수염필」 중에서). 이들은 모두 정약용과 당파가 달랐던 대학자들이었다.

# 제자에게 학문을 놓지 말라 마지막 당부를… 

정약용은 1736년 2월 스승의 회혼례를 축하하러 강진에서 온 제자 황상에게 붓·먹·책·담뱃대와 여비를 주면서 마지막으로 ‘책을 놓지 말라’는 당부를 남겼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지켰다. ‘그 사이 책을 놓고 쟁기를 잡을 때도 있었지만 그 말씀만은 늘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지금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먹과 벼루에 젖어 있다.’(황상 「치원유고(梔園遺稿)」 중에서)

황상은 고통 속에 이룬 스승의 학문적 집념을 과골삼천(踝骨三穿), 즉 ‘복숭아뼈가 세 번이나 뚫렸다’라고 증언했다. 

황상은 75세가 돼 60년 사제의 정과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겼으며, 그렇게 83세까지 지켜나갔다.

1.정약용 간찰. 1834년께 서울 명동 지인에 보내는 편지. 죽기 2년 전 3월에 쓴 편지로, 학문을 놓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준다.(개인소장) 2.정약용 간찰. 정약용이 강진에서 왔다 돌아가는 제자 황상에게 준 선물을 기록한 편지. 3. 수종시유첩. 정약용이 고향에 돌아와 당파가 다른 홍현주 등과 교유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4.정약용이 저술한 여유당전서.
1.정약용 간찰. 1834년께 서울 명동 지인에 보내는 편지. 죽기 2년 전 3월에 쓴 편지로, 학문을 놓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준다.(개인소장) 2.정약용 간찰. 정약용이 강진에서 왔다 돌아가는 제자 황상에게 준 선물을 기록한 편지. 3. 수종시유첩. 정약용이 고향에 돌아와 당파가 다른 홍현주 등과 교유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4.정약용이 저술한 여유당전서.

# 정약용의 삶을 돌아보다

정약용의 삶은 타인의 말이나 평가에 일희일비하기보단 자신이 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실천에 중점을 뒀다.

과거와 추억에 집착해 소비적이고 퇴폐적인 행각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단 현 시대의 역할과 미래 세대의 발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신뢰했다.

또 사회적 역할을 무시한 채 쌓아올린 부귀보단 가난하지만 올바른 세상의 길을 깨달아 가는 학문적 자유를 높이 쳤다. 소모적인 비판에 그쳐 한 발짝도 실행해 보지 못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현실을 바꿔 나가기 위해 무엇이든 해 보는 용기와 위로를 중시했다.

선생의 얼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두 강이 모여 도도하게 큰 바다로 흘러가는 한강을 닮은 정약용의 정신을 되새겨 본다.

복잡하게 얽힌 채 빠르게 변화하는 현 시대에서 소중한 삶을,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희망에 더욱 힘을 주는 삶을 살아 보는 것은 어떨까?

남양주=조한재 기자 chj@kihoilbo.co.kr

사진=<남양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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