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컨테이젼(Contagion, 2011)’이란 영화가 요즘 화제다.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는 메시지가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소름 돋을 만큼 높은 몰입감을 전한다. 홍콩 출장 뒤 기침과 고열 증상을 보이다 며칠 만에 죽는 최초 감염자를 시작으로 감염자가 만졌던 물건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감염이 본격화된다. 그저 단순한 접촉에 의해 시작된 감염은 눈 깜짝할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일상을 무너뜨린다. 사재기와 강도가 들끓는 것을 시작으로 가짜뉴스와 가짜백신, 음모론까지 판을 친다. 현시대의 코로나19 집단감염과 마스크 매점매석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서 발견된다. 

누군가는 현실을 잊기 위해 영화를 즐겨본다고 말한다. 빡빡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영화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작은 바람마저도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영화보다 더한 현실을 맞이하게 된 지금이 바로 그렇다. 언제 어디가 감염병 근원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지극히 일상적인 야외 활동마저 꺼려지는 요즘이다. 아이들도 엄마들도 어르신들도 꽁꽁 갇혀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하고 있다. 영화는 다행히 백신을 개발하면서 끝을 맺는다. 벼랑 끝까지 몰고 간 절망감에서 희망을 찾아낸 것이다. 영화 속 대사 ‘늑장대응으로 국민들이 죽기보단, 과잉대응으로 비난받는 게 낫다’란 말이 이토록 절실할 줄이야. 

영화 말미에 연구자들이 극적으로 백신을 개발했듯 코로나19로 멍들어가는 우리 사회에도 백신처럼 우리를 보듬는 이들이 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남다른 시민의식으로 추가 확진을 막아낸 분들이다. 이분들의 철두철미한 개인위생 관리 덕분에 가족 외에는 접촉자가 없었을 뿐더러 본인을 제외하곤 모두 ‘음성’ 판정을 받는 가장 이상적인 감염병 관리 사례를 만들어냈다. 우리 서구에도 이런 의인(義人)이 있다. 군포시 확진환자로 청라동에 거주하는 구민이다. 이분이 확진 판정을 받은 당일, 청라동에 거주한다는 얘기에 심장이 덜컥했다. 확진환자 진술에 기반한 역학조사관의 1차 조사에서 드러난 접촉자만 무려 20여 명. 이런 경우 심층역학조사를 실시하면 훨씬 더 많은 동선과 추가 접촉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더 이상 접촉자도, 확진환자도 나오지 않길 빌고 또 빌었다. 한데 놀랍게도 심층역학조사 결과 접촉자는 가족 3명뿐이었고,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찰나 이분의 미담에 감동이 배가 됐다. 

CCTV 확인 결과, 드러난 동선 모든 곳(일반 업소 5곳, 엘리베이터 11건)에서 마스크를 철저히 착용했다. 심지어 손으로 마스크를 만지지도 않았다. 특히 확진 판정을 받은 후 병원 입소를 위해 거주지에서 내려올 당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가 23층에서 주민이 타자 바로 내려 1층까지 계단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우려하던 상황을 막을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앞서 모범적인 자가격리로 귀감이 된 인천 확진환자 사례도 있다. 해외여행객 가이드로 의심증상 발현 후부터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는 것은 물론 집에서도 위생장갑을 꼈고 식기도 꼼꼼히 소독했다. 무고한 시민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도보로만 이동했으며 동선과 증상에 대해서도 일지를 작성하는 등 철저히 자가격리를 이행했다. 덕분에 접촉자 23명 전원이 무사할 수 있었다. 

이런 미담만 존재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컨테이젼’에서 가짜백신이 혼란을 가중시키듯 확진 판정을 받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본인이 신천지 교인임을 밝히지 않고 예배 참석 사실까지 숨긴 사례도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서구 노인요양병원으로 출퇴근하는 추가 접촉자를 뒤늦게 발견해 식은땀이 쫘악 났던 적도 있다. 이분에 의한 2차 접촉자가 자그마치 42명이나 됐다. 접촉자 전부에 대한 검체 채취 실시 후 ‘음성’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이런 숨 가쁜 상황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버젓이 집단 모임을 갖고, PC방·노래방 등 밀폐된 장소를 거리낌 없이 이용하는 분들이 있어 답답할 따름이다. 영화보다 혼란스러운 지금 이 시기, 1차 방역은 우리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 정부 차원의 ‘사회적 거리 두기’에 더해 ▶PC방·노래방 출입 쉼 ▶집회·모임 쉼 ▶봄나들이 쉼 ▶친지와의 만남 쉼 등 ‘잠시 쉼표’ 캠페인에 모두 참여하자.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실천 가능한 의로운 행동이 내 가족과 이웃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임을 잊지 말자.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모여 현실에서도 하루빨리 해피엔딩을 맞이하길 고대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