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취임 시 헌법을 준수할 것을 선서한다. 우리 헌법에 국가는 재해 예방과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에는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뜻이 들어 있을 거다. 의당 대통령의 책무 중 책무다.
국민이 어떤 요인으로 죽어가는데도 적정 구호조치를 못하는 국가는 존재 의미가 흐려진다. 법적 차원을 떠나 인간사에 있어 생명은 천부적 존재가치다.
요즘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하나둘 스러져가는 사망 인원이 연일 집계되고 있다. 저 고구려 양만춘이나 조선 이순신 같은 지도자가 그립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헌법상 원수인 대통령은 네 편 내편 없이 진정 위민통치를 해야 한다.
일제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70년이 넘었건만 분단은 지속되고 남한은 극심한 좌우정쟁 중이라 더 그렇다. 21세기 유튜브 시대, BTS의 음악 같은 한류문화가 세계를 강타하는 사이, 코로나19에 급속 감염된 한국은 세계에 ‘코리아 포비아’로 낙인되면서 국격이 추락하기도 했다. 국민들은 각자도생해야 할 판이다. 이와 같이 불안한 현실 묘사에는 독창이 필요 없다. 현실 자체가 곧 창작 이상의 제재(題材)이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도, 발생 초기 감염원인 중국인 입국차단을 하지 않은 게 이 난국의 근본 까닭이었다. 어느 국민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치료도 못 받고 쓰러져갔고, 마스크마저 모자라 5부제 유상배급(?)을 하는 처지다.
그간 대통령은 운명공동체라면서 중국 주석 초청 전화를 한다든가, 북한과의 보건분야 공동협력을 희망했다. 이런 상황을 의아해한 사람이 나뿐이었을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문재인 대통령 탄핵청원이 140만 명을 넘어서고, 국회 국민동의 청원도 10만 명을 채웠다. 여기에 대응해 청와대 대통령 탄핵 반대청원이 일시 폭증했는데 이는 중국발 댓글부대에 기인한다는 주장이 있다.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사업은 우리 고대사를 그들 역사로 각색했고, 이를 배운 세대들은 그대로 믿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한국인 입국 제한에 대해 즉각 강력한 항의를 하는 정부가 무슨 약점이 있어 중국에 대해서는 왜 이리 굴종적 자세를 취하는지 모를 일이다.
심지어 2017년 광화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중국계 유학생이나 조선족이 참여했다는 설이 대두된다. 당시 나도 국정농단사태를 안타까워하며 태극기와 촛불집회 현장을 가본 적이 있다. 촛불집회가 이익집단 민주노총 깃발로 상당히 뒤덮였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이 실로 대다수 국민의 뜻을 대변하였는지 께름칙한 의구심으로 남아 있다. 추후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이러한 중국 측 개입설들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당국의 명백한 확인조치가 뒤따라야겠다.
이참에 드루킹 사건 같은 여론조작이나 재외동포 투표와 사전투표 및 컴퓨터 개표 절차 등에 선거부정이 개입될 우려가 있다는 말이 있다. 민의가 왜곡되지 않도록 총선에 앞서 선거당국의 철저한 대책이 요구된다.
지금 봄은 왔으되 봄철이랄 수 없다. 지난달 입춘 무렵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 내내 겨울답지 않은 날씨에 방심하다가 그만 20여 년간 길러놓은 아열대 과일나무 ‘구아버’를 얼려버렸다. 발코니 섀시 창문을 하룻밤 닫지 못한 바람에 새순은 마르고 몇몇 잎들만 어렵사리 목숨이 붙어 있다. 꼭 소생하기를 간구한다.
마치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쓰리다. 이런 난국에 예술인이라고 하여 음풍농월에 머물 수 없다. 본분을 떠나 요설과 궤변으로 현실정치를 오도하는 자는 정녕 예술인은커녕 정치꾼도 못 된다. 지난 2월 20일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 팀의 청와대 오찬 파안대소는 두고두고 국민들 가슴에 치명적 상흔을 남겼다. 그의 고향 대구가 한창 고통 속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세계적 찬사에 도취된 자만의 결과가 아니길 바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그와 함께 스친다. 영화를 본 뒤끝이 개운찮게 오버랩된다. 시방 나라는 병난과 경제난에 신생정당 난립과 여야 없이 미꾸라지 정치꾼들이 집산하는 혼란 정국이다. 대통령다운 대통령이 절실한 때다. 전화위복! 부디 허물어진 국격이 경제와 더불어 되살아나길 빌면서, 위로의 시조 한 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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