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우리나라의 근대식 통신제도는 우편과 전신을 축으로 출발했다. 전근대 통신제도인 역참제(驛站制)는 전국 주요 통행로에 역참을 세워 놓고 중앙정부에서 지방으로 보내는 문서와 물품을 전달하거나 지방에서 중앙정부에 보내는 문서와 물품(특히 진상품)을 전달하는 제도였다. 이것은 공공 물자 운송 등을 위해 요소요소에 설치됐던 국가 공적인 교통 통신기관이었으나 전·현직 관리나 양반들은 공적인 전달 수단과 사적인 전달 수단으로 모두 활용할 수 있었다. 또 상인들의 상업망까지 두루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인편을 구해 편지나 물건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1881년 고종은 근대 문물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했다. 조선 개화의 본격적인 시동이었다. 당시 일본에 파견됐다 돌아온 홍영식(洪英植)은 일본을 시찰할 때도 역체국을 따로 찾아 우정제도에 대해 자세히 묻고 관련 자료를 챙겼으며 고종에게 개혁과제로 우선 신식우편제도 도입을 건의했다. 이어 1883년 7월 보빙사(報聘使)의 일원이 돼 인천을 출발해 나가사키와 요코하마를 거쳐 9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고 9월 18일 아서(Arthur) 대통령을 접견했다. 그 뒤 40여 일 동안 미국 체류 기간 동안 경이로운 선진문물을 접하게 됐고 특히 우편의 힘과 중요성을 절감했다. 근대적인 통신제도 도입이 통상에 도움이 되고 국가가 부강해질 수 있는 재정개혁의 일환이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우정총국(郵征總局) 설립은 그가 일본과 미국을 직접 다니면서 우정제도를 꼼꼼히 연구한 후 고종을 설득한 결과물로, 근대 우정의 효시이자 최초의 근대 행정제도였다. 새로운 통신 방식을 통해 개화의 시작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고종은 1884년 4월 22일 우정총국을 개설하라는 칙명을 내리고 그를 총판으로 임명했다. 외국인 고문, 실무 담당자, 기본 법령 등을 구비했고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던 일본우편국도 접수할 계획도 세웠으며 만국우편연합(UPU)에도 가입 의사를 표명했다. 정부가 4월 22일을 ‘정보통신의 날’로 제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우정(郵政), 우편(郵便), 우표(郵票), 역체(驛遞) 등 당시 중국과 일본이 쓰던 용어가 아닌 우정(郵征), 우초(郵초), 우체(郵遞) 등과 같이 독창적인 용어를 창안했다. ‘우정(郵征)’이란 정(征)의 자의(字義), 즉 ‘세금을 받아서 우편 서비스를 시행한다’는 의미일 듯하다. 우표를 우초(郵초)라 한 것도 특이하다. 초(초)에 ‘지폐’라는 뜻이 있으니 유가증권 의미를 담은 게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이렇듯 타국과 구별해 사용하게 된 것은 당시 고종을 비롯한 개혁세력의 ‘모방’이 아닌 ‘자주국’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884년 11월 18일 우정총국을 개국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인 문위우표가 발행됐으며 이날 서울·인천 간 최초의 우편 업무를 개시함으로써 근대적 우편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천분국장에는 우정총국 창립요원이었던 월남 이상재가 발탁됐고 조 씨 성을 가진 사사(司事)가 배치됐다. 집배원 즉 체전부(遞傳夫)라는 직업도 새로 생겨났다. 체전부는 뛰어난 지리 감각, 하루에 100리 이상을 걸을 수 있는 건강한 다리,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자기방어 능력, 한문이나 한자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을 두루 갖춰야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우편 배달 업무는 한계가 있었다. 주소체제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표만을 붙여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는 제도의 시행은 민간 정보통신의 최초 출발이라는 의미 이외에 당시로서는 가히 소통의 혁신에 해당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우정총국 개국일로부터 16일 뒤인 12월 4일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이 열리던 곳은 후일 갑신정변이라 불리는 쿠데타의 현장이 됐다. 갑신정변 실패로 우정총국은 개국 20일 만에 문을 닫았고 중단 10여 년 만인 1895년 6월 1일에서야 서울과 인천에 우체사(郵遞司) 설치와 함께 재개됐다. 

130여 년 전 근대 우편제도가 도입되자 우표 한 장으로 전 세계와 소통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문자와 카톡 등 SNS를 통해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또 다른 우편체계로 진화하고 있음을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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