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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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의 사회학
  • 박종대 기자
  • 승인 2020.03.23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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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킹덤’ 시즌 1·2를 봤다. 드라마는 조선시대에 창궐한 역병과 이를 둘러싼 왕족과 권문세가, 힘 없는 백성들의 모습을 담았다. 걸리면 죽는 시체의 모습으로 인간의 살과 피를 탐하는 역병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지만 권문세가는 자신의 권력 지키기에 급급한 나머지 백성은 안중에도 없다. 일단 전염병이라는 소재가 최근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는 코로나19 확산 분위기와 닮은 구석이 많아 감정이입이 잘 됐다. 더 나아가 한 회씩 드라마를 계속 보다 보면 시청자는 신기한 경험도 겪는다. 양반의 수탈에 못 이겨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인육을 먹은 뒤 좀비로 변해 버린 백성의 편에 서서 드라마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역병의 출발은 일본 침략에 맞서 조선왕조 붕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뤄졌다. 여기서 ‘고육지책’은 지극히도 양반의 입장에서 취한 단어다. 한순간에 좀비가 된 백성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일 뿐이다.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 따위는 살아남은 자들이 자신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한 개인이 모여서 이뤄져 있는 집단이다. 누가 그 개인에게 ‘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가. 이후 역병의 전환기를 맞는다. 권문세가가 자신의 권력을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된다. 죽은 생명이나 다름없는 왕을 되살리기 위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를 자행한다. 결국 왕을 통해 다시 역병이 퍼져나가고 가장 큰 피해자는 또다시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는 백성이 된다.

이렇게 드라마에서 수탈의 대상으로 백성의 이미지가 차곡차곡 쌓인 후 좀비로 변한 백성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내가 먹을 곡식을 빼앗아 먹고 살이 찐 양반의 살과 피를 취하기 위해 달려드는 좀비 백성을 볼 때 느끼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한 기분을 선사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코로나19를 생각해본다. 수많은 정보 홍수 속에서 정부의 대처가 세계적으로 훌륭하다느니, 초기의 대응 실패로 감염 확산을 막지 못 했다느니 등 각종 분석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너무 상이한 입장이 충돌하다 보니 여론전만 보이는 형국이다. 팩트를 가장한 의견과 해석을 걷어내고 전염병을 정면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국민으로서 과연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문제점이 있다면 바로잡고 다시 비슷한 사태가 터졌을 때 재발하지 않도록 대처하면 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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