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요즘 하루의 운발은 마스크를 사느냐 못 사느냐로 나뉜다고 한다. ‘마스크 유목민’, ‘마스크 찾아 삼만리’란 말이 나올 정도다. 전례 없는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약국 앞 줄 서기는 여전하다. 내 일상을 공유하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댓글을 보면서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오죽 답답하면 이렇게 하소연하실까’ 그 심정이 백 배 천 배 이해됐다. 

사실 마스크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한 게 있었다. 서구 지역화폐 서로e음 온라인몰을 통한 마스크 판매였다. 하루 판매량을 기존 500매에서 2천500매로 최대한 늘린 것은 물론, 서로e음으로 결제 시 결제액의 10%를 캐시백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까지 넣었다. 하지만 시행 당일, 마스크 생산과 유통 전 과정의 상당량을 정부가 관리하기로 결정하면서 중단해야 했다. 한편으론 인천에서 유일하게 서구에만 4곳의 마스크 제작 업체가 있기에 별도로 물량을 확보해 보려고도 했지만 전국의 공익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결국 마음을 접었다. 

그 다음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대책이 전 구민을 대상으로 한 마스크 긴급 배부다. 서구민은 외국인을 포함해 대략 55만8천여 명, 한 분당 2매씩 배부하려면 어림잡아 120만 매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공적마스크 제도 도입으로 대량구매가 어렵기에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중국에서 덴탈마스크를 들여오기로 했다. ‘왜 중국산이냐’, ‘왜 덴탈마스크냐’고 반문하실 수 있다. 하지만 SB(Spun Bond)와 MB(Melt Blown) 부직포로 제작된 삼중 구조의 마스크로 서구보건소 역학조사관의 의견을 빌리자면 ‘KF94마스크가 없는 상황에서는 타인에게 침방울이 직접 닿지 않도록 덴탈마스크를 사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전달 과정에 있어서도 구민분들을 또 줄 서게 할 순 없었기에 수고스럽지만 각 동별 통·반장 및 구청 직원, 자생단체원, 500여 명의 구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인 ‘코로나19 방패단’이 가구를 직접 방문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배부 방법에 있어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접촉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초인종을 누른 후 "마스크는 문 앞에 놓고 가니 잘 사용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배부 시나리오까지 만들었다. 

친절한 안내를 위해 마스크 전용 특별 봉투도 제작했다. 덴탈마스크 배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지치지 마시고 끝까지 힘내시라’는 진심어린 마음을 문구에 담았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이제 나눠드리는 일만 남았구나’ 생각했던 그때, 전혀 예기치 않은 강풍으로 불가피하게 선박 출항이 미뤄지면서 마스크 2차 물량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배부 일정을 급하게 수정해 약국이 없는 동과 단독주택, 연립주택 밀집지에 우선적으로 전달토록 했다. 하루하루가 참 변화무쌍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드디어 마스크 배부 당일, 다행히 많은 구민분들이 너무 기쁘게 맞이해주시고 고맙게 잘 사용하겠다는 말씀까지 해주셔서 도리어 감동받았다. 그분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그동안 힘겨운 사투가 눈 녹듯 사라졌다. 통·반장님들, 구청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분들도 보람을 느낀다며 모두들 밝은 표정이다. 

향후 2차 배부 때는 좀 더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드라이브 스루’를 활용하는 것도 적극 추진하려고 한다. 서구는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취약계층을 최우선으로 사회복지시설, 지역아동센터 등에 마스크를 배부해왔다. 방역의 최일선을 책임지는 선별진료소 의료진과 중증장애인 활동지원사, 기초연금 대상자 중 고령자에게도 나눠드렸다. 한시라도 빠른 공급을 위해 관내 제17보병사단에서도 병력을 지원해 힘을 보탰다. 지역 곳곳에서 온정 담긴 ‘사랑의 면 마스크’도 만들어지는 중이다. 덕분에 외출이 쉽지 않은 700여 명의 심한장애 신장투석자분들에게 손소독제와 함께 수제 마스크를 전달할 수 있었다. 민·관·군 모두의 정성이 모인 종합선물세트다. 코로나19 전쟁 속에서 피어난 따뜻한 사랑인 셈이다.  

이번에 구민분들에게 배부된 마스크는 단 2매지만, 코로나19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사회적 거리 두기에 참여하는 최소한의 자기방어책 또한 마스크다. 아무리 긴박한 현실이라고 해도 그 방어책만큼은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게 공적기관의 고민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백신은 당장 만들 수 없다 해도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마스크를 찾아 삼만리를 헤매는 현실만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루빨리 마스크를 벗은 자유로운 일상이 찾아오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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