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환 인하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명승환 인하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코로나19는 애초 예상과는 달리 전 세계를 극단적인 공포와 공황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이번 사태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전 국민의 70%가 감염돼 많은 이웃과 가족들이 이별을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는 방역의 모범적인 사례로 세계의 칭송을 받고 있다. 과연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해야 할 일인지는 시각에 따라 명암이 달라져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위기 때마다 발휘된 시민의식과 희생정신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자랑스러운 전통이자 자산이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정부를 신뢰할 수 없고 생사가 달린 문제라 차라리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악순환이 반복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임진왜란 의병,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해방 이후 수차례의 시민혁명 등 밑으로부터의 결단과 행동은 무능한 지도자와 정부, 그리고 부정축재에만 몰두한 탐관오리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도 과거 근대 산업사회 시대의 이념적 대립, 중앙과 지방, 정부와 정부, 도시와 도시 간 갈등과 불필요한 소모전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혼란을 가져왔던 해외 입국자 전면입국 금지 논란, 마스크 대란, 신천지 대응, 우왕좌왕하는 컨트롤 타워, 전문가 경시풍조, 정치적 계산에 의한 막말과 언론플레이 등은 과거 무능한 정권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왜 아직도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적폐청산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이미 만성화된 근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권위주의와 폐쇄성, 그리고 배타성이 근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권이든 공감대 형성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소통을 한다고는 하나 공감 없는 정책과 사후약방문 식 전시행정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사회는 국민이 기본적으로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집 걱정이 없는, 출근 및 이동 걱정이 없는, 교육 걱정이 없는, 의료 걱정이 없는 사회다. 그러한 사회는 국민 개개인의 자아실현과 다양한 가치추구가 가능한 사회다. 

코로나19 이후 정부는 그러한 관점에서 새로 출발해야 한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그리고 후기정보사회로 이행하면서 정부는 기술과 사회와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을 통해 변화를 거듭했다. 향후 미래 정부는 이러한 모든 과정과 요인들을 포용하면서 인간·기술·사회시스템이 개방적이고, 다층적인 플랫폼 형태를 갖춘 정부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미래정부는 각 부문 구성원의 자율과 통제가 조화된 사회시스템과 생태계가 선순환적으로 진화하도록 협력하고 지원하는 협력자 및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정부개혁은 이제 정부 안에서의 행정개혁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개혁이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명확한 비전이 제시돼야 하고, 사회와 국가발전이라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관료도 점차 미래예측 능력, 창의력, 의사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변화를 선도하고, 낭비요소를 없애며, 조직과 사회의 지속성 (sustainability)을 책임지는 매우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행정 관료의 자리는 공공과 민간을 구분하지 않고 가장 적합한 인재로 채워져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인사충원제도의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거버넌스 시대에 적합한 인사교류 방안이 확립될 필요가 있다. 또 행정 관료는 정부·민간·시민 간의 전통적 갈등을 총체적으로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하며, 의식의 패러다임적 전환을 꾀해야 한다. 조직 안에서의 목표 달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실천방안을 제시하는 보다 큰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는 능동적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그나마 우리가 지금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것은 IT강국 코리아, 전자정부 1위, 최고수준의 의료체계, 4대보험 통합시스템, 스마트폰 왕국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최강 국가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역량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고의 자산을 갖고도 사후약방문 식 처방, 규제에 의존하는 행정편의주의,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부처별 경쟁과 이기주의를 과감히 청산하지 않는다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빌게이츠의 「생각의 속도」를 넘어서 ‘공감의 속도’에 능한 스마트 정부가 탄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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