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부조리가 키운 포도알
상태바
분노의 포도- 부조리가 키운 포도알
김진형 동국대 강사
  • 기호일보
  • 승인 2020.03.25
  • 13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존 포드 감독과 배우 존 웨인은 서부영화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다. 이들이 함께 한 영화 ‘역마차’, ‘수색자’,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는 이 장르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존 포드는 서부영화 감독으로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적이 없다. 오히려 비서부극에서 감독의 면모를 인정받았다. 영화 ‘분노의 포도’ 역시 존 포드 감독의 비서부극으로 존 스타인백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미국의 대공황기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 영화는 사회와 인간이 맺는 관계에 대한 깊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진지한 작품이다.

술에 취해 싸움을 벌이다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톰 조드가 보석으로 석방돼 고향집을 찾는다. 그러나 있어야 할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일구던 밭은 황무지처럼 변해 있었고, 가족의 온기로 가득해야 할 집은 폐허가 돼 버렸다. 수소문 끝에 찾은 가족은 오랜 가뭄으로 은행 빚에 쪼들려 생활 터전을 몽땅 차압당했다고 한다. 결국 11명 대가족은 트럭을 장만해 일자리가 넘친다는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그러나 평생을 살아온 내 집과 내 땅에서 내쫓겼다는 상실감에 연로한 조부모님은 여정 중에 돌아가신다.

한편,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캘리포니아는 그들의 기대와는 한참 동떨어진 곳이었다. 톰의 가족 외에도 새 일터를 찾아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나마 찾더라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 없었다. 갖가지 권모술수와 폭력으로 하층민을 갈취하는 사회의 만행과 부조리를 경험한 톰은 변혁의 의지를 갖게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진 그는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톰을 대신해 집안의 가장이 된 어머니는 우리의 삶은 강줄기처럼 계속될 거라 말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영화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 속 미국 사회의 가난과 궁핍, 부조리한 현실을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다뤄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리얼리즘 문학으로도 손꼽히는 원작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둠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짙게 깔린 어두운 그림자는 막막한 현실과 답답한 민중들의 심경, 시대적 분위기를 상징한다 하겠다. 톰 조드를 연기한 배우 헨리 폰다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어머니 역의 제인 다웰은 고통받는 하층민의 분위기를 탁월하게 연기해 관객들의 가슴에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1940년 개봉 작품이기 때문에 80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과 정확히 일치시킬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은 여전히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최근 전염병으로 부득이하게 야기된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삶의 터전을 흔들어 분노로 영글어 가는 포도 알맹이가 되지 않길 바라 본다.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