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태 섬마을 선생님 연구회 운영위원
이영태 섬마을 선생님 연구회 운영위원

 1821년(순조 21) 8월 13일 평안도에서 보낸 계장이 조정에 당도했다. 평양부 성 안팎에서 지난 그믐간에 문득 괴질이 돌아 사람들이 설사 구토하고 근육이 비틀리면서 순식간에 죽어버렸습니다. 열흘 안에 1천여 명이 죽었으나 치료할 약과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유행이 그칠 기미가 없고 인근 마을 각 곳으로 번졌습니다. 이 병에 걸린 자는……10명 중 한둘을 빼놓고는 모두 죽었습니다. 평안도부터 시작해 여러 읍에 전염되는 속도가 마치 불이 번지는 것과 같습니다. 고관대작 사망이 10명 이상이고 일반 관리와 백성의 사망은 부지기수입니다. 대략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이 괴질은 중국 동북지방으로부터 들어온 것이라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순조 21년 8월 13일자)

 순조 21년 8월 중국에서 유입된 역질이 평안도 지방에 크게 유행했다. 이후 역질이 한성, 경기, 영남지방을 거쳐 이듬해에는 호남, 강원도 지방을 휩쓸어버렸다. 당시 인구를 1천만 명 내외로 추정할 때, 지방수령들이 관리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통계 수치를 축소하거나 은폐한 것을 감안하면 인명 피해는 보고된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한성부에서 환자나 시체를 찾아 성 밖으로 격리시키는 조치를 하거나, 혜민서나 활인서에서는 역질 환자들을 보살피는 임무를 맡았다. "영의정 김재찬이 보고하기를 역병이 크게 유행하여 사망자가 매우 많다. 활인서, 혜민서에 구료를 맡겨 삼군문(三軍門)으로 움막을 짓도록 하고 진청(賑廳)으로 하여금 식량을 공급토록 하라(「순조실록」)"는 기록은 서울의 각 기관에서 역질 환자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0년 전에 발생한 역질을 단순히 과거 일로 여길 수 없을 정도로, 현재 전 세계에 신종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확진자, 사망자와 관련된 수치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각 나라는 검역을 강화하고 국민들에게 생활안전 수칙을 계도하기에 바쁘다. 특히 자가격리자라면, 전염병 예방 행동 수칙을 철저히 따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보도되고 있다. 제한된 시간이라 하더라도 ‘격리’라는 단어가 주는 불편함을 누구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이 자신을 포함해 주변인들을 배려하는 마음과 직결된다는 점을 격리자는 물론 우리 모두 새겨야 할 때이다. 

 백우에게 병이 있었거늘, 공자가 이를 찾아가 위로하실 때, 남쪽 창으로부터 그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이럴 리가 없을 터, 천명이로구나. 이 사람이 이런 병을 얻다니."(「논어」)

 공자가 역질에 걸린 제자를 방문했다. 제자는 스승을 임금의 예로써 맞으려 했지만 공자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일화이다. 역질 환자였던 백우는 스승이 병문안 온다는 소식에 자신의 몸을 남쪽 창가 쪽으로 옮겼다. 공자가 북쪽 창가에서 병문안 할 수 있도록 조처한 제자의 행동은 방향에 기대 스승을 높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되 이는 자신의 역질이 스승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우려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공자는 제자의 의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남쪽 창가에서 병문안을 마쳤다. 

공자의 제자 백우는 자가격리자를 넘어 위독한 상태에 있던 환자였다. 자신의 역질이 혹여 방문자들에게 전염이라도 될까 싶어 노심초사하며 방안에서 몸을 옮기고 있는 백우의 모습에서 스승에 대한 존경을 운운하기에 앞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읽어낼 수 있다. 역질의 전염성과 환자의 고통을 알고 있던 백우였기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으면서도 타인을 위해 방안에서 죽을 힘을 다해 몸을 옮겼던 것이다. 역질이 창궐하는 이때, 개개인이 지녀야 할 마음을 공자의 제자 백우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전염병 예방 행동 수칙’을 따르는 것이 곧 백우의 마음이며 이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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