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 인천지방법무사회 인천3지부장
이대현 인천지방법무사회 인천3지부장

 2018년 3월 허름한 차림의 중년 남성(A)이 당 법무사무소를 방문해 오랫동안 별거 중인 배우자(B)와 이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사연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그 해결의 도움을 요청했다. A는 1993년 장남으로 홀로 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할 상황에서 B가 이를 받아들여 결혼하게 됐는데, 시어머니와 같이 살던 기간 B가 시어머니에게 자꾸 말대꾸하고 시어머니를 모시지 않으려고 분가를 강행하는 등 고부간 갈등이 심했해. 또한 A가 사업상 술자리를 자주 해 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A를 의심해 ‘어느 여자와 놀고 왔느냐’ 따지면서 잠을 못 자게 괴롭히고 뒷조사를 하는 등 B의 의처증이 도를 넘어 A는 사업에 전념하지 못하므로 인해 사업이 기우는 결과까지 초래돼 2002년부터 사실상 별거 상태에 이르게 됐다. 

결국에는 상호 감정이 극에 달해 A는 위 사유를 원인으로 2004년 B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으나, 소송 진행 중 B의 여러 제출 증거에 의해 오히려 혼인 파탄 책임은 A에게 더 크다는 재판부의 판단으로 패소(청구기각)한 이후, 17년 이상 장기간 별거에 이르게 됐다. 그동안 여러 차례 B와 합의에 의한 이혼을 시도했으나, B는 보복감정으로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A는 이미 이혼소송에서 패소한 바가 있어, 섣불리 다시 소를 제기하는 것도 무리이긴 하나, 그동안 이혼소송까지 해 부부관계가 더욱 악화돼 오랫동안 따로 살면서 대화로써 부부간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교류 없이 각자 생활관계가 고착화돼 회복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A는 별거 이후 여러 사업 실패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홀로 어려운 생활을 유지하고 있어, 설사 B와의 관계가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가정을 꾸려나갈 형편이 되지 못하고, 이혼소송 시 A에게 가정파탄 책임의 정도가 더 크다고 했더라도, 부부공동생활 관계의 해소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유책성도 상당 정도 약화되고 A가 처한 상황에 비춰 당사자의 이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파탄에 이르게 된 데 대한 책임의 경중이 상당히 줄었다고 볼 수 있고, 이혼을 거절하는 B의 혼인 계속 의사는 일반적으로 이혼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참작해야 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당사자가 처한 상황에 비춰, 이는 혼인의 실체를 상실한 겉으로만 법률혼 관계일 뿐 부부로서 사실상 의미가 없다. 

현재와 같은 파탄 상황을 유지하게 되면, 사실상 부부에게 상당한 고통을 계속 부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점 등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면, 파탄에 대한 A의 유책성이 반드시 A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아니 될 정도로 여전히 남아 있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민법 제840조 제6호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당 법무사의 도움을 받은 A는 위 사유로 소를 제기해 1년여의 변론절차 진행으로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았고, B는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으나 항소기각 판결로 A는 혼인관계를 정리할 수가 있었다. 

그동안, 우리 민법은 혼인생활 파탄에 대해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유책주의를 취해 왔으나, 사실 유책주의는 과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 남편이 아내를 쫓아내는 축출 이혼을 방지해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부인을 버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약자보호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막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의식이 높아지면서 10여 년 전부터 부부의 오랜 기간 별거의 경우 전향적으로 유책주의의 예외 판결이 다수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고 파탄주의를 취한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사회현상의 적절한 반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혼인 중인 부부간 일방 또는 상호 책임으로 장기간 별거에 의해 사실상 부부관계가 파탄된 상황이라면 위 각 사유를 참고해 혼인관계 정리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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