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꼽으라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1597년 대중에게 선보인 이래 4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은 이 작품은 몬테규와 캐풀렛 가문의 갈등으로 희생된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전하고 있다. 한편,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스로 "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만큼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전쟁에 참전한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다. 유명한 작품인 만큼 1932년과 1957년에 각각 영화화됐는데, 오늘은 록 허드슨 주연의 1957년작을 소개한다.

이탈리아 군에 자원입대한 미국인 헨리는 앰뷸런스 수송장교로 복무 중이다. 그에게 참전은 일종의 명예로운 체험과도 같았다.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는 승리로 끝날 가까운 미래를 고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혼자를 잃은 야전병원 간호사 캐서린에게 전쟁이란 죽음을 기다리는 희망 없는 삶이었다. 비록 전쟁과 미래에 대한 생각은 달랐지만 의지할 곳 없는 삭막한 전장에서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현실은 이들의 사랑과는 무관하게 흘러갔다. 연합군이 독일에 대패해 퇴각하던 중 헨리는 끔찍한 현실을 목격하고, 적국의 스파이라는 누명 속에 총살될 위기에 처한다. 이에 탈영을 선택한 그는 캐서린과 함께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향한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행복을 맛본 두 사람은 다가올 봄에 새 식구를 맞이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캐서린의 난산으로 산모와 아이 모두 목숨을 잃는다. 죽음을 피해 전쟁 없는 곳으로 도피했지만 마지막 숨을 내쉬는 아내 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쟁의 부조리와 죽음이라는 본질적 허무 속에 꽃핀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는 영미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쟁의 포화에서 헨리는 난폭함과 비이성을 목격하지만 한편으로 숭고한 희생과 사랑도 깨닫게 된다. 세상에 던져진 이상 누구도, 어떤 장소도 죽음 앞에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진실한 사랑은 끝이 있는 인생에 살아갈 수 있는 의미가 된다. 동명 영화 역시 전쟁과 인생의 허무 속에서 삶과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한 남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비록 소설이 품은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동일한 비율로 담아내진 못했지만 큰 울림을 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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