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최근 들어 제주 4·3사건이 또다시 이슈를 타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서 4·3사건을 항쟁으로 표기하는 등 기존과는 상반된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는 탓이다. 4·3사건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폭동이냐 혹은 항쟁이냐의 표기가 아니라 그것이 왜 일어났고 어떠한 과정으로 진행돼 왔으며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과연 무엇이냐일 것이다. 

역사 서술 방식은 서술자의 관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사기」를 쓴 사마천은 그 나름대로의 평가에 의해 인물들을 중요도에 따라 ‘본기’와 ‘세가’ 그리고 ‘열전’으로 분류한다. 그의 판단에 의해 공자는 열전이 아닌 제후의 대열인 세가에 포함했다. 우리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최초 역사서인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고려 건국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편찬된 역사서이다. 그러나 이보다 한참 전인 2500년 전 희랍의 투키디데스는 처음으로 객관적인 역사서술을 했다는 점에서 ‘역사서술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된다. 이처럼 역사서술에 있어 객관적 시각은 중요한 것이다. 

제주 4·3사건은 국가 생성과정에서 생겨난 불행한 사건이었다. 1947년 제주 남로당 (남조선로동당)들이 5·10총선을 저해할 목적으로 3·1절을 기해 사람을 모았고 이때 어린아이가 경찰이 탄 말에 죽게 되는 사고가 난다. 이에 분개한 주민들이 경찰서에 항의하자 총격이 있었고 다시 몇 주민이 희생된다. 이에 제주 남로당들이 주민들을 획책해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고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경과 서북청년단을 투입한다. 그후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겨우 진압을 하자 곧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역사서술은 어떤 시각에 있는가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 먼저 어린아이가 억울하게 경찰이 탄 말에 깔려 죽었고 이에 불만을 제기한 몇 주민이 경찰의 흉탄에 쓰러진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봉기하고 이를 진압하고자 투입된 군경이 이들 선량한 주민을 무차별 학살을 했다고 하면 당연히 진압을 명한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을 그야말로 나쁘게 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 남로당이 이북의 지령을 받고 5·10선거를 저해할 목적으로 주민을 선동했다면 이 사건은 분명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폭동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무리가 있었던 것은 어쩌면 건국을 위해 불가항력적이었다고는 하지만 불행한 일이었다. 더욱이 남로당이 제주를 점령하고 곧이어 한국전쟁이 터졌다면 현 대한민국은 이북과 같이 김정은의 독재 치하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상반된 역사기술에 있어서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인가? 2018년 제주도교육청에서 어린 학생들을 위해 제작한 4·3사건 관련 동영상을 보면 전자에 초점이 맞춰져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의 진압에 대한 포악성만을 기술하고 있다. 폭동의 주동자인 남로당이나 이들이 어떠한 목적을 갖고 경찰과 민간에 대한 테러를 어떻게 일으켰는 지에 대한 기술이 없고 영상에는 온통 토벌대에 쫓기는 주민의 처참한 모습뿐이다. 여기에서 주는 메시지는 오직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에 대한 저주만이 있다. 아직도 제주도교육청이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세금으로 이러한 동영상을 제작했는지 알 수가 없다.

소설과 역사서는 다르다. 소설가는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이야기를 부풀리거나 없던 이야기도 꾸며낼 수 있다. 사극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역사가가 4·3사건과 같은 사건을 기술할 때는 사건이 일어난 큰 흐름을 설명해야 하고 그 흐름 속에서 사건의 발단이 무엇이고 어떠한 희생이 있었는 지를 설명해야 한다. 단편적인 일을 크게 부풀려 전체를 호도하는 일은 역사학자나 지식인들이 멀리해야 할 일이다. 역사는 반드시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전후 맥락의 흐름 속에서 이해되고 기술돼야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주 4·3사건 역시 소련과 중국 그리고 미국 간의 시대적 역학과 그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이해해야 하고 이러한 큰 틀 속에서 제주도의 상황을 이해해야만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을 수 있다. 

아직도 우리는 역사를 이념적 틀에 꿰어 해석하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관을 갖고 역사를 기술하게 되면 포악한 조선의 민비를 명성황후로 왜곡해 미화할 수 있고 또한 존경받아야 할 인물을 지탄의 대상으로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초중고 시절처럼 판단력이 없는 시절에 이입된 잘못된 역사관은 결코 바뀌지 않는 법이다. 그만큼 역사가는 역사에 대해 정확한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기술해야 한다. 흥미 위주의 역사 소설이나 텔레비전 사극물이 역사 사실로 둔갑하는 나라에서는 역사에의 기술은 어떠한 교훈을 주지 못하고 온갖 왜곡과 판타지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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