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서울여성병원 아이알센터(난임센터)  과장
이지은 서울여성병원 아이알센터(난임센터) 과장

산부인과 의사로서 흔하게 접하지만 진단 내릴 때마다 말을 꺼내기가 참 난감하고 안타까운 경우가 있는데, 바로 ‘유산’되는 경우다. 특히 반복적으로 유산되는 경우는 더하다. "왜 이렇게 자주 유산이 되나요?"라는 질문을 항상 받지만, 원인불명인 경우가 50%나 차지하기 때문에 답하기 곤란할 때가 많다. 

‘습관성 유산’이란 임신 20주 이전의 자연유산이 3회 이상 반복되는 경우를 말한다. 최근 학회에서는 2회 이상 유산이 반복되는 경우로 정의가 점차 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습관성 유산 원인을 파악하는 검사의 보험 적용이 되는 기준은 3회 이상이다. 단순히 임신 테스트에서만 양성이 나오고 초음파에서 아기집이 확인되기 전에 다시 임신 테스트기가 음성이 나오고 생리가 나오는 경우를 ‘화학적 임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착상 후 지속되지 못하고 일찍 종결돼 버리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유산이라고 할 수 없다. 따로 검사를 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연유산은 전체 임신의 15%가량으로 화학적 임신을 포함하면 2~4배 이상 증가해 30~60%에 이르러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2회 연속 유산이 발생하는 경우는 전체 임신의 5% 미만이고, 3회 반복 유산이 되는 경우는 1% 미만으로 흔한 케이스는 아니다. 

습관성 유산 원인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원인불명으로, 검사해도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 원인불명에는 유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인 ‘나이’가 포함돼 있다. 유산율은 만 35세가 넘으면 급격히 증가해 만 35~39세는 25%, 만 40~44세는 거의 50%에 이르고 만 45세 이상에서는 90%가 넘는다. 

일반적으로 초기 자연유산의 50~75%가 태아의 염색체 이상으로 발생하는데, 나이가 증가할수록 염색체 비분리현상 등 태아 염색체 이상이 발생할 빈도가 증가한다. 부모의 염색체 이상으로 습관성 유산이 되는 경우는 5% 정도를 차지한다. 

자궁의 구조적인 이상이 있는 경우도 쉽게 유산될 수 있다. 격막자궁이나 쌍각자궁, 중복자궁 등과 같은 자궁기형이 있으면 유산율이 증가하고 자궁 내에 근종이 있거나 유착이 있는 경우 등도 착상에 방해가 돼 유산이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혈액응고 체계에 관련된 인자들의 결핍으로 선천성 혈전성향증이 있으면 혈전 위험성이 증가돼 유산의 위험을 높이게 된다. 의학적인 질환뿐 아니라 생활 습관과 관련된 환경요인들이 있을 수 있는데, 흡연은 태반으로 가는 혈류를 수축시키고 태아에게 공급되는 산소를 감소시키며 혈전의 위험성도 증가하므로 하루 반 갑 이상 흡연하면 유산율이 약 2배 정도 증가한다. 주 2회 이상 음주하는 산모에서도 유산율이 2배가 되고 매일 음주하는 경우는 3배가 된다. 적당한 커피 섭취는 유산 위험과 관련성이 적으나 하루 2~3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경우 유산율이 약 1.5~2배 정도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다. 체질량지수가 30㎏/㎡가 넘는 고도비만 여성도 유산율이 증가한다. 

습관성 유산 검사는 위에 언급한 원인들을 파악하는 검사들이다. 자궁기형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초음파와 자궁난관조영술(보통 나팔관 개통을 확인하기 위해 검사하지만 자궁기형 진단에도 도움이 된다)을 시행하고, 자궁기형이 확인되면 자궁경으로 격막 절제술을 할 수도 있고 자궁 내 근종이나 폴립이 있으면 자궁경으로 제거해 착상률을 향상시킬 수 있다. 

내분비질환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혈당·당화혈색소·갑상샘호르몬을 검사해 이상이 있으면 당뇨 치료와 갑상샘호르몬제를 복용하는 것이 유산율을 감소시킬 수 있다. 또 항인지질항체증후군이나 혈전성향증이 발견되면 저용량 아스피린과 헤파린과 같은 항혈전제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원인의 절반을 차지하는 원인불명인 경우에는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면역주사’라고 불리는 감마글로불린 주사, 스테로이드 복용, 프로게스테론 주사나 질정 등이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치료 효과에 논란이 있고 입증된 방법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치료 가능성이 있는 것에 희망을 걸고 약을 사용해 볼 수 있지만 정부에서 허가한 기준에 부합돼야만 약을 쓸 수 있는 것이 안타깝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3회 이상 유산된 여성에서 말초혈액 자연살해세포(NK cell) 분율이 12% 이상인 경우, 임신이 확인되면 감마글로불린 주사를 14주 이전까지 3~4주 간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허가돼 있다. 

<도움말=서울여성병원 아이알센터(난임센터) 이지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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