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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복 인천문인협회 회원/수필가
  • 기호일보
  • 승인 2020.04.02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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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복 인천문인협회 회원
류인복 인천문인협회 회원

민통선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겨울은 매우 추웠다. 손이 부르트는 강추위에도 추운 줄 모르고 밖에서 노는 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면 화로(火爐)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화력이 좋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의 사랑만큼이나 따뜻함과 훈훈함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형편이 좋은 집에는 난로를 피웠지만, 그 시절 촌락에는 화로를 이용하는 민가가 대부분이었다. 

가마솥 화로는 밤새도록 자신을 불사르며 시골 방 온기를 채워줬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었다. 날이 밝으면 화로의 불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재만 남았다. 

주인을 위해 정열적으로 하루를 살고 산화한 것이다.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를, 동등하고 한곳으로 모이게 하는 응집력도 발휘했다. 그때만 해도 화로의 투박하고 예스러운 멋과 낭만은 추억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터줏대감으로 군림하던 토속적인 화로가 화력이 좋은 연탄난로에 밀려나는 신세가 됐다. 성능 좋은 난로는 여러모로 편리했고, 월등했다. 날이 추워지면 커다란 물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이 팔팔 끓면 차가운 손도 녹이고, 따뜻한 물을 홀짝거리며 몸도 녹였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추억의 군것질은 변하지 않았다. 요즘도 겨울이면 고향에서 고구마를 올려보낸다. 먹는 방법이나 굽는 과정은 다르지만, 그 맛만은 변함이 없다. 날것을 까먹기보다는 구워 먹는 게 일품이었고, 추억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그 순간만큼은 숯검정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중학교 시절, 원거리를 통학하면서 도시락은 필수였다. 교실 난로 위에는 도시락들이 빌딩처럼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었다.

매 교시 쌓인 도시락 위치는 바뀌었고, 목소리가 크거나 거친 아이들의 도시락은 바닥에 고정돼 있었다. 바닥을 고수한 도시락들은 종종 타기도 했다. 

밥을 먹지 못하게 된 아이들의 욕심은 그치지 않았다. 뚜껑과 숟가락을 들고 돌아다녔다. 순간 아이들은 긴장했고, 약육강식이 싫어도 퍼줘야 심신이 편했다. 그때는 그 아이들이 몹시 밉고 정나미가 떨어졌다. 

돌아보면 그 시절 개구쟁이 행동들도 한때였을 텐데, 못된 아이들이 돼 보지 못한 것이 부러울 때도 있다.

쉬는 시간에는 가래떡으로 누른 떡을 뽑아 먹는 게 흥미로웠다. 금지사항이었음에도 선생님의 눈을 피해 난로 연통에 단단한 가래떡을 호떡 누르듯 힘줘 내리면 연통 열기에 누른 떡이 대패 껍질처럼 말려서 익어 나왔다. 

그 맛은 어느 주전부리 과자보다 싱싱했고, 바삭바삭하니 구수했다. 추운 겨울날 학교에서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스릴감 있는 유일한 식품이었고, 인기가 많았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난로 주위로 몰려들었다. 장난치는 아이, 누른 떡을 굽는 아이 등 소란스러웠다. 올려놓은 도시락들이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무질서한 곳에는 항상 사고가 뒤를 따랐다. 한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도시락을 건드려 바닥으로 떨어져 도시락 내용물이 난로 주위를 어지럽혔다.

호랑이 선생님은 수업을 위해 들어왔고, 미처 수습하지 못한 아이들은 모두가 혼쭐이 나고 말았다. 그 후로 도시락은 난로에 올려놓지도 못하고 한동안 찬밥을 먹으며 따끔한 훈육까지 달게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말썽도 부리고, 개구쟁이도 되어 보며, 그렇게 자라야 더 많은 성찰을 하고 깨달음도 크지 않나 싶다.

돌아보면 예전엔 지금처럼 난방이 잘 된 것도 아닌데, 난로를 놓아서 추위도 막고, 물을 끓여서 속도 달랬다. 문득 이렇게 오래전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겨울 덕분이다. 

그 시절 고구마와 감자, 가래떡은 군것질거리로는 없어선 안 될 식품이었다. 난로가 있는 곳엔 항상 고구마가 있었고, 가래떡과 도시락이 빠지면 팥소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었다.

퇴근길, 횡단보도에서 젊은 청년이 군고구마를 팔고 있었다. 내 눈에는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전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드럼통에 연탄불로 구워내는 이동식 군고구마 장수이다. 청년은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쉽지 않았을 텐데, 그의 결단과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내 어린 시절 군것질로 고구마에 대한 소중했던 추억이 청년에겐 학비 충당이라는 간절함으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서게 했다. 먼 훗날, 그 청년도 군고구마 장수에 대한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하리라. 

난로보다 덩치가 큰 드럼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랑의 온기와 군고구마의 진한 냄새는 그 옛날 난로에 대한 추억 속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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