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지금 기득권 거대 양방(兩幇)의 횡포가 극심해서 나라가 휘청이고 백성들의 원성이 뜨겁습니다. 일찍이 무현거사와 회찬도인이 외쳤던 ‘백성의 뜻이 온전하게 반영되는 전국무림총회의 꿈’은 요원합니다. 저희 상정방은 이 잘못된 구조를 깨뜨리고 무림 생태계의 다양성을 통해 대표성을 만들어 미래의 희망을 만들고자 애써 왔으나 지혜가 부족합니다. 공명 선생께서 일찍이 천하의 재편을 내려다보시던 그 혜안을 다시 한 번 발휘해 주십시오. 이웃 반도의 창생을 긍휼히 여겨주소서."

공명 선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촛불이 거세게 일어나고 벌써 몇 년이 흘렀는데도 기득권이 판치다니 정말 안타깝구려. 전국무림총회는 지역을 대표하는 고수들이 모이는 만큼 민심이 제대로 반영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건 동서고금 어디서나 다 마찬가지오. 다만 그쪽에서는 해찬방이 대권을 거머쥐고 지방관들을 호령하면서 깨어 있는 민심을 어느 정도 수렴하고 있으니 당분간 그 기세를 꺾기 어려울 것이오. 교안방도 쉽지 않을 게요. 연이어 부족한 리더십에 갈팡질팡하고 있으나 달구벌을 기반으로 쌓은 철옹성이 있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강남파가 거드니 그 힘은 아직도 꽤 남아 있소. 그런데다 지난번 빛고을에서 일어났던 철수방은 지역을 해찬방에게 내주고, 그쪽의 인사들이 교안방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으니 상황이 더욱 꼬이지 않았소."

"정말 대단하십니다. 수만 리 떨어진 나라의 근황을 마치 손바닥 보듯 보고 계시니 말입니다. 먼 길을 찾아온 보람이 있습니다."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오. 돌아가는 형편을 안다고 해서 해법이 나오는 건 아니니 말이오."

"무슨 겸손의 말씀을……. 사실 저희 상정방에서는 지역 거점을 두기가 어렵다는 걸 일찍부터 알고 전국 민심의 지지율에 기댄 비례제연동형이라는 대책을 세운 바 있었습니다."

"호, 그건 묘수요. 원래 백성들이란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둘로 나뉘어 꼴사납게 다투게 되면 제3의 길을 찾기 마련이오. 내 일찍이 천하삼분론을 얘기한 까닭이 거기 있소. 그쪽에서는 중도니 뭐니 하는 모양인데 그게 아니라……."

"맞습니다. 선생."

"허허, 말을 끊지 말고 들어보시오. 거점을 마련하려면 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거요. 지역을 접는 대신에 무림총회에 파견되는 전국대표 지분에서 찾는 방책이 묘수였다는 거요."

"공명 선생, 한데 그 묘수가 그만 꼼수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렇듯 뵈러 온 것입니다."

"꼼수에 걸렸다고요? 그럼 중달이 그쪽에 가담했던 말이오?"

"중달 선생보다 더한 꼼수가 나왔습니다. 지역대표 추천 외에 전국대표 지분까지 챙기려고 괴뢰해찬방, 괴뢰교안방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그들은 독립방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괴뢰방입니다. 심지어는 고수들 몇을 파견해 지원금까지 챙기려 하고 있습니다."

"꼼수라……?"

공명 선생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도 삼국지 읽어보셨을 게오. 대여섯 차례나 묘수란 묘수를 다 동원해서 맞서봤으나 중달의 꼼수에 어이없이 당했단 말이오.  꼼수에는 꼼수로 대응해야 하는 법, 내게 기대지 마시고 어서 중달에게 가보시오. 꼼수의 대스승이니 무슨 수가 있을 것이오."

"대회가 곧 시작되는데 시간이 없어요. 공명 선생께서 죽은 놈 살리시는 셈치고 한번만 우리 상정방을 도와주십시오."

"나도 꼼수라면 치가 떨리는 사람이오. 내 목을 가져간다 해도 꼼수에 꼼수로 대응하는 건 사양하리다. 다만 한 가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으신 노고에 보답하는 뜻에서 ‘꼼수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충수가 된다’는 격언을 선물하리다. 요는 그 시간을 어떻게 앞당기느냐, 제 타이밍에 맞도록 만드느냐에 관건이 있다는 것이오."

"그렇다면……."

"서둘지 마시오. 그 기량이 없는 자들이 뭘 하겠소. 아마 연이어 실점을 거듭할 것이오. 조국의 교훈을 잊은 해찬방, 반대 외에는 할 줄 모르는 교안방 모두 차돌 같은 민심을 만난다면 그야말로 일패도지, 추풍낙엽 신세가 될 것이오. 민심을 더 다지시오. 차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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