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코로나19가 많은 걸 바꿔놓는 요즘이다. 생소한 단어는 물론, 전에 없던 생활수칙도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난생 처음 겪는 경험들이지만 우리의 적응력 또한 꽤나 대단함을 느낀다. 최근 실시 중인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대표적이다.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자는 캠페인으로 온라인 맘카페에는 ‘웅녀상’까지 등장했다. ‘한결같은 집콕으로 감염 확산 방지에 기여한 바… 집 밥만 먹으며 호랑이처럼 집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고 짧지 않은 시간을 버텨준…’이란 내용을 담아 ‘잘참았다협회’가 수여하는 상(賞)이다. 우울한 현실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재치 있는 센스가 아닐까 싶다. 우리 구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동참하자는 의미로 ‘서로 쉼표, 마음만은 가까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서로의 쉼표가 모여야 코로나19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간절함을 담았다. 

 이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나부터 먼저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저녁 일정을 잡지 않고 바로 집으로 귀가하고 있다. 사실 30여 년 넘게 공직생활을 하면서 일 욕심도 많거니와 워낙 바쁜 일정 탓에 집에서 저녁을 먹어본 횟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대부분 밤이 돼서야 퇴근했기에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일이 내겐 낯설 수밖에 없다. 이참에 어색함도 떨쳐낼 겸 가사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김치와 매운 고추 썰기에 나섰다. 그런데 직접 해보니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손에 김치를 안 묻히려고 긴 젓가락으로 잡고 써는데 삐뚤빼뚤 모양이 제각각이다. 매운 고추도 나름 잘 썰어보려고 일회용 장갑까지 낀 채 시도했는데 아뿔싸 장갑을 썰어버렸다. 손가락을 다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손에 화끈거리는 매운 기운은 가득하고 눈물까지 핑 돌았다. 괜스레 아내에게 미안해졌다. 

 설거지라도 잘해보자는 생각에 밥을 먹은 후 빈 그릇을 들고 일어서는데 이번엔 큰 녀석이 아빠가 그릇 가져다 놓는 걸 태어나서 처음 본다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순간 ‘내가 우리 집 이방인이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기억 저편에 넣어뒀던 20년 전 아프리카의 추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2000년 6월, 우리 가족은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유엔(UN) 내 환경전담기구인 유엔환경계획 본부로 파견 근무가 이뤄진 덕분이었다. ‘오후 5시에 퇴근하고 주말에는 쉬는 이상한 직장’, 내가 느낀 아프리카의 첫인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프리카로 가기 직전까지 난 일에 파묻혀 지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살갑게 대하는 것도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그러다 보니 해가 떨어지지 않은 오후의 귀가가 참 낯설었다. 게다가 아프리카는 치안이 불안해 저녁에는 철문을 굳게 닫은 채 집안에만 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미리 체험해본 셈이다. 

 한국에서 지낼 때보다 훨씬 큰 집에서 덩그러니 가족과 있자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이렇게 멀뚱한 채 지낼 순 없기에 나름의 묘책을 생각해냈다. 초등학교 1학년, 3학년인 두 아들에 아내까지 합세해 끝말잇기와 말타기 등을 하며 한데 어울려 놀았다. 처음엔 ‘이렇게라도 시간을 보내야겠다’란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다 보니 ‘이런 게 진짜 가족이구나’란 정겨움이 느껴졌다. 직접 스파게티 재료를 사와 요리에도 도전했다. 맛있다며 한 접시를 금세 비우는 모습이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매주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선뜻 해버릴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머나먼 땅 아프리카에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았다. 20년 전 기억과 지금의 일상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든다. 코로나19로 인해 바뀐 것들을 탓만 할 게 아니라 그동안 놓쳤던 일상을 하나씩 되찾아 행복의 이음새를 다시금 조여보자는 거다. 

 나 역시 아프리카의 기억을 떠올리며 집에서 만큼은 그런 외톨이가 되지 않도록 살갑게 대화도 나누고 실수 투성이지만 집안일도 뭐든 해보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잊힌 이슈지만 최근 UN이 발표한 ‘2020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지난해보다 7계단이나 하락한 61위로 집계됐다. 누굴 탓할 것도 없다. 불행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고 사는 우리니 말이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이번 사회적 거리두기 또한 그렇다. 바뀐 일상에 너무 당황하지 말고 낯설어도 차분히 적응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지금까지 너무 커다란 조직에만 익숙해져 있었다면 이제부터라도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내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지금은 그 어떤 방역보다 묵혀뒀던 우리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순간이다. 나와 사랑하는 내 가족, 이웃을 지킬 심리방역 말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