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어느 유머책에 엄마가 아이에게 2천 원을 주면서 "천 원은 헌금이고, 천 원은 네 용돈이다"라고 하자, 아이는 양손에 천 원씩 쥐고 신나게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차도를 건너다가 턱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손에 쥐었던 천 원이 하수구에 그만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일어서면서 울상을 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거 헌금할 돈인데 어떡하지?" 제가 저 아이라고 해도 아마 저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싶었을 테니까요. 살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선택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길이 하나밖에 없으면 별 고민 없이 선택하겠지만, 길은 늘 두 갈래로 나뉘어 있어 고민하게 됩니다. 

「내 영혼의 산책」이란 책에 중국의 어느 스타발굴대회에서 첫 우승자가 된 22세의 청년 류웨이 씨의 사연을 전하고 있습니다. 열 살 때 감전 사고로 두 팔을 모두 잃은 장애우인 그는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발가락으로 피아노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발가락으로 뛰어난 피아노 연주를 해서 결국 우승한 겁니다. 우승한 후에 그가 한 말입니다. "제겐 오직 두 가지 선택만이 있었습니다. 빨리 죽어버리거나 아니면 신나는 삶을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신나게 살고 싶었고, 그래서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삶을 완전히 바꿔놓곤 합니다. 나를 ‘살리는’ 선택인지, 아니면 나를 ‘죽이는’ 선택인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국민은 지금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습니다. 폭풍처럼 전국을 강타한 충격적인 감염 속도가 조금은 진정돼 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동안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을 벗어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사그라들 때까지 불편함을 조금 더 감수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갈래 길에 서 있는 것이지요.

스님들의 깨달음을 전하는 책인 「조동록」에 선문답 같은 대화가 나옵니다. 제자가 스님에게 "뱀이 개구리를 삼키려 합니다. 개구리를 구해줘야 옳습니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해야 옳습니까?" 이 대화를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말입니다. 개구리를 돕지 않는 것이 왠지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구리를 살리려고 뱀을 죽인다면 뱀 역시 억울할 수밖에 없겠지요. 저는 개구리를 생명체로 여기지만, 뱀은 개구리를 그저 먹이로밖에 여기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뱀을 죽이는 것은 마치 제가 밥을 먹고 있을 때 누군가가 먹지 못하게 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자의 질문에 스님은 무엇이라고 답해 줬을까요? 이렇게 답을 주셨습니다. "개구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돼. 그러나 개구리를 살리겠다고 뱀을 죽여 버리면 뱀에게 할 말이 없어져. 뱀이라고 개구리를 해코지하고 싶을까. 누군가를 죽여야만 살 수 있게 생겨 먹었을 뿐인데."

참 어려운 선택입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모를 때가 많은 게 삶인가 봅니다. 선택은 자유롭게 하지만, 선택에 따른 결과는 각양각색입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이 나와 너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선택이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산에 올라가 도마뱀을 잡아 비닐봉지에 넣고 누가 많이 잡았는지 시합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잡은 어떤 도마뱀은 꼬리가 이상했습니다.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천적을 만난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스스로 자르는 선택을 함으로써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요. 도마뱀의 선택은 올바른 선택이었던 겁니다.

모두가 힘들어 합니다. 힘들 때는 탐욕이 기승을 부립니다. 그 탐욕은 사재기로, 사기로 나타납니다. 방역지침을 따르지 않는 교만으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런 선택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죽이는’ 선택입니다. 두 갈래 길에서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잘라 자유를 찾았듯이 조금만 더 절제하며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을 선택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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