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한 번도 가지 않은 길, 이번 개척지는 교육 현장이다. 세 차례에 걸친 개학 연기에 이어 더 이상 학업을 중단할 수 없다는 의지 아래 실시된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 총책임을 맡고 있는 교육당국은 물론이고 선생님도 아이들도 학부모도 몸과 마음이 바쁘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건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교육 방식에 익숙해지도록 의지를 북돋워 주는 일 아닐까? 

교육의 힘은 실로 놀랍다. 나 또한 내 삶의 가치관을 바꿔 놓은 아프리카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교육의 힘을 느꼈다. "빵이 먼저일까요? 연필이 먼저일까요?" 아프리카 남수단, 그 안에서도 가장 가난한 땅이라 불리는 톤즈. 그 땅을 밟은 내게 고(故) 이태석 신부님이 던진 질문이었다. 미처 답하기도 전에 "예수님이 부활해서 참혹한 이곳에 나타나신다면 성당을 지었을까요? 학교를 지었을까요?"라며 비슷한 질문을 이어가셨다. 당시 톤즈는 기나긴 내전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렇게 생사가 오가는, 배고픔은 물론이고 온갖 질병이 가득한 상황에서도 과연 교육이 미래일까?’라고 생각했던 난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도통 몰랐다. 

대개 교육이라 하면 어느 정도 기반시설이 만들어져야 시도할 수 있기 마련이다. 신부님이 톤즈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셨을 때도 그랬다. 번듯한 건물에 책상과 의자를 넣어 두고 운동장과 울타리까지 갖추려면 꽤나 힘들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신부님은 단 두 가지 준비물만으로 단숨에 학교를 만드셨다. 칠판과 연필이면 충분했다. 뜨거운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커다란 망고나무 아래에 칠판을 걸고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에게 연필을 나눠 준 후 글자부터 가르치셨다. 그렇게 총과 칼을 잡아온 소년병의 손엔 난생처음 연필이 쥐어졌고, 학생이 돼 글씨를 쓰게 됐다. 망고나무에 꾸려진 야외 교실은 어느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점점 규모를 넓혀 갔다. 아이들은 신부님의 가르침을 통해 배우는 즐거움과 꿈의 소중함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기적은 톤즈에서 끝나지 않았다. 신부님의 권유로 한국에 유학 온 토마스 타반 아콧과 존 마옌 루벤이 차례로 의사의 꿈을 이룬 것이다. 톤즈에 무한한 애정을 쏟은 신부님의 사랑과 신부님이 펼친 꿈을 고국에서 이어가겠다는 이들의 결의가 이뤄 낸 마법이었다. 내가 처음 만들고 이사장직을 맡아 이끌었던 수단어린이장학회가 이 두 청년의 꿈에 힘을 보탰다. 한 사람이 퍼뜨릴 수 있는 헌신의 깊이와 그로 인한 놀라운 변화를 곁에서 지켜본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인생교육을 마음에 새겼다. 

지금의 온라인 개학시대를 보면 그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교육 정상화를 위한 어른들의 고민과 지원은 치열하다 못해 눈물겨울 정도다. 5G 실내(인빌딩)망 구축부터 실시간 온라인 화상강의(Zoom) 시스템과 유튜브, 카카오TV 등 원격수업을 지원하는 거창한 방송 플랫폼까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실감케 하는 기술이 속속 등장했다. 국무총리까지 나서 관내 원격교육 시범학교를 방문해 참관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깊은 관심을 표했다. 단기간에 촘촘한 관계망이 채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현장은 역동적이며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학교별로 교사 간 열띤 토론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 내고 서로의 수업 콘텐츠를 확인하며 피드백까지 해 준다고 한다. 아이들이 직접 관련 앱을 개발할 날도 머지않았다. 

다시 톤즈의 기억을 끄집어 내자면 신부님 생전 당시 모 기업의 후원을 받아 노트북 30대를 보냈던 적이 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전기도 없는 곳에 노트북을 보내 봤자 어떻게 쓰냐고 할 테지만 난 톤즈 아이들이 뭔가 해 낼 거라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기가 통하기 전에도 아이들은 노트북으로 타자를 치고, 손재주가 좋은 몇몇은 해체와 조립까지 해 냈다. 이후 신부님과 함께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해 전기를 연결하고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게 된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교육을 이끄는 가장 위대한 힘은 아이들에게 자기계발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즉, 동기부여다. 코로나19식 교육이 새로운 도전이 된 지금, 어른들의 역할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본적인 지원, 그거면 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잘 해 낼 거란 믿음과 그 믿음을 현실화시키는 좋은 자극제, 동기부여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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