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는 전국 최대 규모의 기초자치단체에 걸맞게 각종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마을만들기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마을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확산됐다.

2010년 염태영 수원시장이 민선5기 초임 시장으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마을만들기는 생소한 도시개발 형태였다. 일부 지역에서 주민들이 시범적으로 도입하기는 했으나 지자체가 주도해서 추진된 적은 전무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수원시는 우리나라 최고의 마을만들기 표준모델로 성장하며 국내 각 지자체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본보는 수원형 마을만들기가 특례시 도약을 꿈꾸는 수원시 행정에 있어 어떻게 초석으로 자리잡았으며 큰 전환점으로 작용했는지를 살펴보고 그 성과를 소개해 본다.  <편집자 주>

2015 마을계획단 발대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5 마을계획단 발대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마을르네상스의 탄생

"이제는 지역의 문제를 주민이 스스로 해답을 찾고 지역의 발전계획을 세워 새로운 마을로 가꿔야 한다."

2012년 수원시 마을만들기 소식지인 「마을르네상스 저널」 창간호에서 ‘수원의 꿈을 엿보시렵니까?’라는 제목의 인사말에서 염태영 시장이 남긴 메시지는 그의 시정철학을 엿보게 한다.

환경운동가 출신인 그는 민선5기 수원시장으로 취임한 이후 공무원이 주도하는 행정이 아닌, 주민이 주축이 되는 자치를 강조해 왔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시정에 고스란히 반영돼 ‘마을만들기’라는 산물로 이어졌다.

당시 마을만들기는 대구 삼덕동, 서울 성미산마을 등 전국적으로 일부 지역에서만 주민들이 도입한 터였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라진 공동체 문화를 되살리자는 취지였다.

자치단체장이 마을만들기를 추진하려는 곳은 수원시가 처음이었다. 이는 과감한 도전이자 결단이었다. 부동산시장에서 ‘강남 불패 신화’라는 수식어가 쓰일 만큼 불도저식 개발 논리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마을만들기를 통한 도시재생’은 생소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반면 염 시장은 자신의 시민사회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마을만들기’는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내다봤다.

우리나라는 1961년 지방자치단체 자치권이 말살된 이후 30여 년 만인 1990년대 초 지방자치가 부활하고 1995년 자치단체장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면서 주민자치의 열망이 커졌다. 더불어 시정은 행정의 전유물이 아닌 시민과 NGO, 행정 등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다.

시는 즉각 민선5기 중요한 시민 참여 사업이자 핵심 사업 중 하나로 마을만들기 추진에 나섰다. 그 일환으로 2011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브랜드 네이밍 공모전을 실시해 당시 접수된 1천78건의 브랜드 네임 가운데 ‘다시 태어나다’ 의미를 지닌 ‘마을르네상스’를 마을만들기 정책 브랜드로 선정했다.

이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주민이 스스로 도시를 문화와 복지, 자연과 환경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삶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실천해야 한다는 염 시장의 풀뿌리 민주주의 이념이 담겨 있는 것이다.

2013년 생태교통 수원 축제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2013년 생태교통 수원 축제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 수원 협치의 틀을 세우다

시는 2010년 12월 마을만들기를 본격화하기 위해 담당부서 실무자와 전문가들로 TF를 구성해 ‘좋은마을만들기조례’를 제정한 뒤 제2부시장 직속으로 행정전담부서인 ‘마을만들기추진단’을 신설하고 총괄 업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2011년 3월에는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좋은마을만들기위원회를 발족하는 한편, 민간의 인적 자원과 경험을 활용하기 위해 수원시 마을르네상스센터를 수원의제21추진협의회에 위탁운영하는 등 2011년 상반기에는 마을만들기 사업 지원체계를 구축했다.

또 시의회, 전문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연구토론회와 도시환경아카데미를 진행하면서 수원형 마을만들기인 마을르네상스 기본정책을 수립해 시민과 언론에 공표하고, 같은 해 7월 수원시 마을르네상스센터가 역사적인 첫 공모사업 공고를 내고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는 오랫동안 민관 거버넌스 행정을 꿈꿔 왔던 염태영 시장의 정치적 이상(理想)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마을르네상스센터 개소식에서 현판을 가르키고 있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마을르네상스센터 개소식에서 현판을 가르키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좋은 마을만들기 사업은 2013년 9월 전 세계 최초로 열렸던 ‘생태교통 수원 2013’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한 달간 원도심인 팔달구 행궁동 일원에서 열렸던 이 행사는 주민들이 자동차 없이 비동력 이동수단만으로 실제 생활에 임하며 기후변화 문제와 미래 도시모델에 대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져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도심 재생으로 침체에 빠져 있던 행궁동 마을을 친환경 마을로 탈바꿈하고 공동체 회복에 기여함으로써 마을만들기의 정수를 보여 줬다.

그동안 마을르네상스 공모사업은 2011년 54개를 시작으로 2012년 131개, 2013년 140개, 2014년 134개, 2015년 144개, 2016년 134개, 2017년 84개, 2018년 49개, 2019년 73개 등 총 9년간 940개 사업을 진행했다. 참여한 주민 수도 1만5천345명에 달하는 등 뜨거운 참여율을 기록하고 있다.

해당 공모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69억 원으로, 이 사업들이 추진되면서 지역 곳곳에서 마을환경 개선, 이웃 주민과의 교류, 참여의식 변화, 주민리더 발굴 및 육성 등 좋은 성과가 나타났다.

# 원조에서 벤치마킹 오는 수원시

2013년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생태교통 수원 2013’ 축제 기간에 수원에서 ‘사람이 사는 마을, 마을이 만든 사람’을 슬로건으로 제6회 마을만들기 전국대회가 열렸다.

당시 전국 37개 자치단체장은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마을만들기 행정을 현장·과정 중심으로 더욱 열심히 추진하겠다는 다짐과 중앙정부에 대한 요청, 전국 자치단체장의 동참 요청 등을 담은 선언문을 발표하는 뜻깊은 자리를 가졌다.

행궁동 벽화골목.
행궁동 벽화골목.

이 행사는 수원시가 띄운 마을만들기 불씨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2년 후인 2015년 9월 ‘마을만들기 지방정부협의회’(협의회) 출범으로 이어졌다.

협의회는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한국마을지원센터협의회 등 마을만들기 중간 지원 조직, 마을활동가, 주민대표들이 민선6기 1주년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마을만들기 활성화를 위한 자치단체장 의지 표명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정책적 지원을 담보할 조직 설립 등을 요청한 끝에 출범하게 됐다. 수원시, 서울시 강동구, 강원도 강릉시 등 전국 62개 기초자치단체와 서울시, 경기도, 강원도, 대전 및 광주광역시 등 6개 광역자치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출범식에서 협의회는 염태영 시장을 초대 상임회장으로 선출했으며, 2018년 10월 말까지 3년간 임기를 수행했다. 명실공히 마을만들기 모범 도시 반열에 올라선 셈이다.

2017년 문재인정부가 새로 출범하고 ‘도시재생 뉴딜’을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들이 ‘도시재생 뉴딜’ 정책 구상을 위해 견학을 오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마을만들기 원조’로 불리는 일본에서 온 학자들조차 마을르네상스센터를 방문해 "일본보다 낫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시 관계자는 "도입 초기에 마을만들기를 낯설어 했던 주민들이 다양한 교육과 경험을 쌓아 자생력을 키우면서 ‘공동체 회복’이라는 사업 취지를 잘 살려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종대 기자 pjd@kihoilbo.co.kr

사진=<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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