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헵번, 위노나 라이더, 시얼샤 로넌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당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적인 여배우이며, 동일한 영화에서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각 1933년, 1994년, 2019년에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둘째 딸 ‘조’를 소화했다.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막내 딸 ‘에이미’에 캐스팅된 바 있는 이 원작 소설은 영화화만 총 7번에 이르며 드라마,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으로 수차례 리메이크될 만큼 사랑받은 작품이다. 매번 시대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옷을 입고 대중과 만나는 ‘작은 아씨들’이 영화로 돌아왔다.

2019년 작은 아씨들은 전쟁에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꾸리는 어머니와 올망졸망한 네 딸들의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시작하지 않는다. 자매들은 성장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뉴욕에서 홀로 생활하는 둘째 조는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가 됐다. 비록 자신의 소설이 편집자의 요구대로 축약되기도 하고 결말이 바뀌기도 하지만 돈을 받고 글을 팔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선 만족했다. 

예쁘고 화려한 삶을 동경한 큰딸 메기는 가난한 교사와 결혼해 쌍둥이를 낳았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물질적인 궁핍이 주는 초라함이 힘들기만 하다. 음악가를 꿈꾼 베스는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대고모님의 후원으로 그림 유학 중인 막내 에이미는 자신의 재능이 그저 그런 것 같아 속상하다. 꿈꾸던 소녀들은 이제 현실에 맞춰 살아가거나 혹은 꿈을 향해 투쟁 중이다. 그러던 중 베스의 병환이 짙어져 자매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다.

이 영화는 네 자매의 사랑스럽고 유쾌했던 어린 시절과 성인이 돼 직면한 현실의 고단함을 자유롭게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유년 시절의 시끌벅적한 행복은 현실의 고충과 대비돼 더욱 따뜻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동시에 현재 각자 겪는 고민은 생생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150년 전 여성은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남편의 경제력에 의존한 삶이 세계의 전부였다. 때문에 사랑보다는 경제적인 관점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그런 제한적인 생의 틈바구니에서 네 자매의 사랑 찾기와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2019년 ‘작은 아씨들’에 녹아 있다.

이번 영화가 지닌 독특한 색채는 네 자매가 겪는 현재의 고민이 과거의 향수보다 비중이 커졌다는 데 있다. 가족애, 자매애, 꿈과 사랑이라는 보편적 메시지 위에 예술과 돈, 결혼과 경제력이라는 이슈를 강화해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현실적이며 동시대적인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영화 ‘작은 아씨들’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여성들의 사랑과 야망을 지지하는 작품으로 우리의 오늘을 힘껏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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