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에 대한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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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에 대한 단상(斷想)
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20.04.22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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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 바로 영웅의 사전적인 의미다. 이로 본다면 영웅이란 보통 사람의 상대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보통 사람인 서민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해결해 낼 수 있는 영웅의 탄생을 갈망하곤 했다. 서민들의 영웅탄생에 대한 갈망은 설화나 소설과 같은 문학적인 것으로 투영돼 나타나기도 했다. 서민들의 문학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설화에는 특히 영웅과 관련된 내용이 많은데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아기 장수 설화’라고 할 수 있다. 

 아기 장수 설화란 ‘초인적인 힘을 가진 아이의 탄생 - 부모에 의한 아이의 죽음 - 용마(천마)의 등장 - 증거물 제시’라는 기본적인 구조를 가진 설화를 말한다. 이 설화는 전국적인 경향을 띠고 있어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접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아기 장수 설화는 비슷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듯 비슷한 줄거리의 설화가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이야기에 상당한 서민 의식이 반영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기 장수 설화의 기본 내용은 ‘좌절된 영웅탄생의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웅적인 면모를 지닌 아이가 태어났지만, 그 부모에 의해 좌절된 것은 당시가 봉건사회였기 때문이다. 왕권사회였던 전통시대에는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 무엇도 용납하지 않았다. 영웅적인 힘을 갖고 태어난 아기 장수는 장차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인식됐고, 이 때문에 아기 장수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척박한 서민들의 삶을 구원해 줄 영웅인 아기 장수는 이런 연유로 그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통시대의 서민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영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역사상에는 많은 영웅들이 존재하고 있다. 

 ‘난세(亂世)에 영웅이 난다’라는 말이 있다. 평화로울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위기의 상황이 발생하면 그 상황을 해결해 줄 영웅이 등장한다는 의미이다. 그간 우리 민족은 외침 등의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유지해 왔다. 많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굳건히 나라를 유지해 온 것은 그것을 해결한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세종대왕, 이순신, 안중근 등이 이러한 상황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요즘 시대에는 영웅이 사라졌다’라거나, ‘현대는 더 이상 영웅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라고들 한다. 이 말은 현대는 더 이상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영웅이 없거나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과연 현대가 영웅을 요구하지 않거나 영웅이 사라진 시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영웅이란 시대에 따라 그 표상이 달라질 뿐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맞는 영웅의 탄생이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봤을 때 위의 말은 보통사람과는 다른, 강력한 힘을 가진 영웅의 부재나 불필요를 의미할 뿐 영웅 자체를 부정하는 의미라고 할 수는 없다. 

 현대의 영웅상은 전통적인 영웅상과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난세의 상황을 타개하는 지도력을 지닌 인물이 영웅이었다면, 현재는 평범함 속에서 이타적인 모습을 보인 인물이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화재의 장소에서 홀연히 뛰어들어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한 소방관들, 차에 갇힌 사람을 구해낸 평범한 서민들 등 이기적인 생각이 만연한 상황에서 타인의 안위를 더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을 현대에는 영웅이라고 한다. 전통시대 때에는 인식조차 되지 않았던 인물들, 영웅들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한 보통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 부각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의식조차 되지 않았던 평범한 서민들이 현대에는 당당히 영웅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 때문에 국가적 마비 상황에 이를 정도로 초유의 국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국난의 시기에도 극복의 희망이 보이고 있다. 바로 영웅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통시기라면 영웅으로 칭송을 받았을 리더인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장관이 아니다. 바로 전염병이 창궐하는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인들과 구급대원들이다. 그리고 구하기 힘든 마스크를 흔쾌히 기부하는 사람, 착한 임대료 운동에 동참하는 임대사업자, 환자들을 위해 헌혈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러 불편함을 참고 차분히 국가시책에 맞춰 생활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 이들이 바로 오늘날 이 혼란한 시국을 극복하게 할 영웅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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