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국 인천대학교 IPP사업단 산중교수
정세국 인천대학교 IPP사업단 산중교수

1347년부터 4년여에 걸쳐 유행한 페스트는 유럽에서만 3천만여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유럽인구 절반 가까이 사망했다는 자료도 있다. 페스트로 인해 전 세계에서 약 1억 명이 희생됐다고도 한다. 대역병은 지배계층인 영주, 기사와 성직자 중심의 중세 유럽 봉건제도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고 경제와 사회, 개인 생활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페스트로 가장 심대한 타격을 받은 것은 교회의 권위였다. 페스트가 돌자 고위 성직자가 앞다퉈 도망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신뢰를 버리기 시작했다. 많은 성직자가 병으로 사망한 것도 교회 영향력의 축소를 가속화했다. 죽은 이의 뒤에 자질이 부족한 성직자가 대거 등장하자 평판은 더욱 추락했다. 

또 신자들은 기도나 고행을 통해서는 예방이나 치료에 효과가 없음을 알게 됐다. 역병은 신이 인간 죄를 향해 형벌을 내리는 것으로 가르침 받았으나 더 이상 해법이 없는 교회를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부터 신도들이 갖고 있던 실망감이 후일 종교개혁의 밑받침이 됐다. 

코로나19는 중세 페스트 대역병 이후 가장 넓게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4월 20일 현재 전 세계 214개 국가에서 256만 명이 감염됐고 사망자는 17만 명을 넘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전 영역을 마비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조차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때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변화하는 계기이다. 사회경제의 다양한 영역 가운데 음식숙박업소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은 휴업, 휴직, 구조조정의 애처로운 상황에 빠져있는 대표적 분야이다. 고용이 증가돼도 시원찮은 시기인 올해 2월과 3월에 28만 명이나 실업급여를 새로 받겠다고 신청했다. 항공과 관광업계는 직격탄을 맞아 구제금융 없이는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인다. 세계 경제는 갈수록 더 위축된다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기생충’의 환희를 며칠 만에 잊게 됐고, 속성이 드러나지 않았던 특정 종교 집단의 패역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헌신적인 의료인들의 모습은 세계적인 자부심으로 부각됐다. 질병관리본부의 역할에 대한 벤치마킹, 의료키트 수출 쇄도 등은 새로운 영역에서 우리를 감동시켰다. 2월부터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이웃과 관계 맺는 소소한 일상의 중요성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됐다. 전 국민 모두가 바이러스 방위군에 동참함으로써 졸업식은 물론 입학식도 없애야 했고 몇 주나 연기된 개학은 비대면 수업으로 바뀌어 초·중·고 선생님과 대학 교수들은 강의 준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대학에서 쌍방향 원격 실시간 수업 등 비대면 강의로 인해 시대의 흐름을 앞당기게 된 것은 고무적이다. 인터넷을 활용한 방송통신대학이나 사이버 온라인 강의에 국한됐던 범주를 넘어 대학의 전체 강의를 온라인에서 실시함으로써 대학5.0 시대를 앞당기게 됐다. 물론 실험이나 실습 등의 교과목은 직접 해 볼 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포스트정보화 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이 변화하는 계기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온라인 수업이 기본이고 캠퍼스에서는 각종 프로젝트나 신사업 론칭 문제 해결 등 산학협력이 더욱 커지는 대학5.0 시대를 무난히 수용하게 될 것이다. 초중등학교에서의 원격 온라인 교육 훈련도 대학 5.0시대의 전조 기회가 되고 있어 다행이다. 

또 하나는 공장이 멈춤으로써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미세먼지를 느낄 만한 기회도 없었으나 실제로 줄었다. 에어코리아의 데이터를 보면 작년에 비해 초미세먼지는 줄어들었다. 우리의 소비욕망을 채우기 위해 지속적인 가동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공기청정기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검증하는 긴 단계를 생략하고 새로운 제도의 도입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은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긍정적인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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