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연구교수
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연구교수

대도시화로 인구가 초밀집되고, 단시간의 이동 가능으로 국가와 국가 사이가 초밀접하게 된 현대 문명의 구조 탓에 바이러스는 미증유의 파괴력으로 순식간에 전인류를 위협하게 됐다. 이렇듯 바이러스에게는 역설적으로 퇴화한 형태로 진화한 인류문명을 코로나19는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며 퇴보를 강제한다. 이제, 코로나19에 의해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미래의 풍경화가 그려지려고 한다. 스스로 진보해왔다고 자부하는 인류는 역사의 연도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의 산물인 BC와 AD를 사용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재치있는 이들은 이런 약어를 좀 색다르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BC를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으로, AD를 ‘재앙 이후(After Disaster)’라고 표시한다. 종교 지배의 시대에서 경제 지배의 시대로 전이된 지금, 현재 상황에서의 연대표기 방식으로는 오히려 그럴싸한 듯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해 여러 예측을 쏟아내고 있는데, 당연한 듯 경제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고 모두가 이들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 이들이 그리는 미래의 풍경은 생각보다 더욱 스산하다. 대표적으로 기타 고니파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팬데믹의 경제적 충격파가 올해를 넘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바탕에 깔았다. 곧 전 세계 경제적 손실이 경제대국 일본과 독일의 GDP를 합친 것보다 큰 9조 달러(약 1경96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세계 경제의 올해 성장률이 -3.0%가 될 것이란 예측을 내놓는 동시에 앞으로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론도 공식화했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과거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1970~80년대 1·2차 오일쇼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또 차원이 다른 수준의 불황이 엄습할 것으로 보인다. 알다시피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미 한 달 사이 한국 인구 절반이 실업자가 되었다. IMF 체제를 직접 체험한 우리로서는 이러한 예상과 상황들이 더욱 강하고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생명이 우선일까 경제가 우선일까? 미국과 유럽에서도 생명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강하지만 실제로 경제 하강 속도가 가속화되면 과연 무엇이 우위를 차지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자본보다 사람이 더 중시됐던 적이 있던가? 팬데믹 이후의 풍경 속에서는 바이러스와 인간이 아닌 인간과 자본과의 전쟁이 더 크게 벌어질 것인데, 과연 인간이 자본을 이긴 적이 있던가? 인간이 자본과 싸움에서 지게 되면 마음에도 디플레이션이 찾아온다. 마음의 밑바닥이 무너지면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코로나 자체가 인류 미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코로나에 직면한 ‘우리의 선택’이 미래를 영구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며, "하나는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 역량 강화 사이의 선택과 다른 하나는 민족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자랑스럽게도 대한민국 정부 조직과 국민 구성원 모두는 지금까지 어느 나라보다 의연하게 잘 대처해 왔고 여러 방면에서 세계적인 모범사례들을 남기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6일 코로나19 이후 삶에 대해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며 우리가 걸어가는 곳이 새로운 길이 되고 세계인들이 따라오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번의 팬데믹은 이제까지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을 정상으로 만드는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 시대를 불러왔다. 유례없는 경제위기와 함께 찾아온 뉴노멀의 신세계는 인류의 새로운 도전이자 세계 질서의 재편을 앞당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기치 않은 바이러스 사태로 인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렇다. 장자는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 우리가 가야할 길(道)은 원래 없고 길은 걸어 다니면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길은 노자의 말처럼, ‘위도일손(爲道日損)’ - 오히려 자신을 덜어내고 버림으로써 생겨나는 길이다. 유발 하리리가 말한 선택보다 더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문명 차원에서의 선택을 해야 할 때이다. 새롭게 그려나갈 우리 미래의 풍경, 우리의 손에 달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