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벌써 10여 년 전인데, 구청에서 주최한 강연에 나섰더니 담당자는 강사료라며 지역 상품권을 내밀었다. 전국 규모의 대형 도소매점이 아니라면 인천 어디서든 사용 가능한 그 상품권으로 무엇을 구매할까?

전통시장의 작은 주점에서 친구와 모처럼 잔을 기울이기로 했다. 몇 순배 주거니 받거니 하다 상품권을 내미니 주인이 처음이라며 당혹해했다. 단골인 친구의 설명을 듣고 억지로 받았어도, 낯설어 했다.

다시 그 주점을 찾았다. 남은 상품권을 다 쓸 요량이었는데, 주인은 반색하며 같은 상품권을 모두 받았다.

지난번 상품권을 은행이 현금으로 바로 바꿔 줬다면서. 이후 비슷한 상품권을 사용할 기회는 없었는데, 인천시의 상품권 발생은 일과성이었을까?

아쉬운 건 시장에 풀린 상품권이 일회용으로 그쳤다는 점이었다. 주점 주인은 언제나 시장의 단골 가게에서 식자재를 구매할 텐데, 그 상품권을 이용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역 상품권에 대한 홍보보다 지역 상품권이 가진 가치에 대한 인식이 당시 시청이나 시민이나, 부족했을 게 틀림없었다.

인천시 동구는 코로나19로 어려움 겪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동구사랑상품권’을 지급했는데, 주민 사이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액수보다 동구에 제한된 사용 범위 때문이라는데, 다른 지역처럼 ‘인천e음’ 전자상품권을 바란다고 언론은 주민 인터뷰를 소개했다.

인천e음 카드라면 인천 모든 지역에서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용액 일부를 ‘캐시백’으로 되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정부에서 거액의 예산을 할애해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려고 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전국 어느 곳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 그 여부는 지금 알지 못하지만, 사용 기간은 한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확실하게 진정되지 않는 코로나19가 경제생활을 어렵게 할 때 소상공인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를 돕자는 취지일 테니까. 은행권처럼 예금으로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어떤 계층은 당장 소비하지 않을지 모른다. 어떤 이는 명품 구매하려 다른 지역을 방문할 수 있다.

지역으로 제한한다면 어떨까? 주변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먼저 눈에 띄지 않을까? 여유 있는 이는 절박한 이웃에게 흔쾌히 지원금을 양도하지 않을까?

원활한 동영상 촬영을 위해 스마트폰을 최신형으로 얼마 전 바꿨다. 거금이었는데, 어느새 ‘대폭 할인’ 광고가 나온다. 머지않아 신형이 나오려나? 곧 헐값일 텐데, 은행권은 다르다. 너덜너덜하고 찢어져도 액면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예금하면 가치가 늘어난다. 그래서 그런가? 5만 원권은 금고에 잠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환이 많은 돈일수록 지역의 경제효과가 높아진다고 경제학자는 지적하는데, 이번이 제공되는 긴급재난지원금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교환되도록 할 방법은 없을까? 

100여 년 전 실비오 게젤이라는 사업가는 ‘스탬프화폐’를 고안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액면 가치가 일정 비율로 감소하기에 그만큼 수수료를 은행에 내야 하는 돈이었다.

확인 도장이 찍혀야 액면가를 인정받는 스탬프화폐를 받은 사람은 기간 내에 사용해야 했기에 유통 속도가 5배나 빨랐고, 덕분에 빈곤했던 마을에 여유가 찾아왔다고 한다.

재난지원금의 가치를 스탬프화폐처럼 줄이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일정 기간 이내에 지역에서 교환이 많을수록 혜택을 늘리는 방식이라면 어떨까?

경제학에 전문성이 없으니 예견할 능력은 없지만, 100여 년 전의 경험을 참고해보자. 재난지원금이 주민과 자영업자, 그리고 소상공인 사이에 활발하게 소통되면서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지역의 경제적 어려움을 상당히 회복하게 이끌지 않을까?

인천e음 카드도 비슷하게 운용된다면 크게 이바지하지 않을까? 교환하며 자주 만나는 주민들은 그만큼 살가워질 텐데.

재난지원금과 달리 지역 상품권이나 지역화폐는 계속 유용할 수 있다. 은행이자와 세금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지역과 국가를 넘나드는 사업가에게 불이익이 없으니 국가와 지역 재정에 별 손실이 없다. 전문가의 분석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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