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다. 대표작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 ‘ABC 살인사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은 모두 대중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작가가 창조한 에르퀼 푸아로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와 함께 탐정의 대명사로 통한다. 성서와 셰익스피어 작품 다음으로 많이 판매돼 기네스북에도 오른 애거서 크리스티는 명실상부한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하겠다. 

 그녀는 뛰어난 플롯 구성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재미있는 작품을 탄생시켰으며, 작중 인물의 범행 동기와 심리도 섬세하게 묘사해 몰입감을 높였다.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그녀의 소설은 수많은 영화의 원작이 돼 지금도 재창조되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애거서와 살인의 진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이 아닌 그녀의 삶을 모티브로 창작된 작품이다.

 1926년 12월 6일. 신문 1면이 애거서의 얼굴과 소식으로 채워진다. 헤드라인은 ‘실종’. 유명 작가의 행방불명 소식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타고 나간 자동차는 집 근처에서 발견됐지만 그녀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에 1만5천여 명이라는 대규모 인력과 경찰견, 사냥견까지 투입돼 그녀의 자취를 쫓았지만 허사였다. 무성한 소문과 자살에 무게가 실리던 수색 열흘째, 그녀는 뜻밖에도 요크셔의 스파에서 발견된다. ‘테레사 닐’이란 낯선 이름으로 체크인한 애거서는 놀랍게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일시적인 기억상실을 호소했다. 이후 기억을 되찾았지만 해당 소동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아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남아 있다.

 영화 ‘애거서와 살인의 진실’은 이 실종 실화에 상상력을 입혔다. 종적을 감추기 전 애거서는 남편의 이혼 요구와 창작 슬럼프로 심정이 복잡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파가 찾아와 억울하게 살해된 친구 죽음의 범인을 밝혀 달라는 수사를 의뢰한다. 그녀는 추리소설가였지 실제 탐정이 아니었기에 요청을 거절했다. 이후 환경 변화가 절실했던 애거서는 노파가 남기고 간 사건 파일에 흥미를 느껴 탐정직을 수락한다. 

변장한 모습과 가명으로 새롭게 탄생한 그녀는 억울한 죽음 뒤에 남겨진 진실을 추적한다. 하지만 실제 수사는 소설과 달랐다. 게다가 예상 밖의 살인사건이 발생해 진짜 경찰이 투입되고, 그녀는 가짜 신분과 정체가 발각될 위기에 처한다. 설상가상으로 신문 1면은 유명 추리소설가의 실종사건으로 떠들썩하다. 그녀는 이 모든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실제 있었던 일에 가상의 에피소드를 덧씌워 흥미로운 이야기로 탄생한 ‘애거서와 살인의 진실’은 작가의 팬이라면 한 번쯤 볼만한 작품이다. 다만, 이야기의 개연성이 치밀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미스터리한 실종 해프닝이 여전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운데 ‘테레사 닐’이란 가명의 정체가 남편 내연녀의 이름인 것으로 밝혀져 그녀가 겪은 기억상실에 연민이 든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