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총장(직무대행)/법학박사>
이선신 <농협대학교 총장(직무대행)/법학박사>

지난 5월 1일 우리 국민들은 ‘근로자의 날’을 매우 우울한 분위기에서 보내야 했다. 불과 며칠 전인 4월 29일 이천시 물류창고 지하 2층 우레탄 작업 현장에서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불이 나 38명의 근로자가 사망하고 10여 명이 다친 대형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는 일용 근로자라는 점과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희생자의 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더욱 아려온다. 특히 이번 화재는 지난 2008년 40명의 사망자를 낸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점에서 참 어이가 없다. 정부는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효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근로자의 날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천 화재 참사를 언급하면서 "산재는 성실한 노동의 과정에서 발생한다"며 "그 어떤 희생에 못지않게 사회적 의미가 깊고 가슴 아픈 일이다. 무엇보다 안전한 일터로 산재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산업장 근로감독은 세계 최저 수준"이라며 "사업주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천 화재사고는 (소방대응 등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민주당이 노동의 문제 해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산업현장의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미래통합당도 문재인 대통령의 근로자의 날 메시지에 대해 "이천화재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진 가운데, 무엇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모처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산업현장의 안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많은 사람들이 핵심적인 근로 조건으로 ‘임금’과 ‘근로시간’을 꼽는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근로조건은 ‘안전’의 문제이다. 근로자가 일하다가 죽거나 다치게 된다면 아무리 임금이 높고 근로시간이 단축된다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교통사고 사상자 전광판은 있는데 왜 산업재해 사상자 전광판은 없는가"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면서 산업현장에서 근로자가 죽거나 다치는 일을 ‘으레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다. 시급히 그런 인식을 떨쳐내고 ‘안전 제일’을 실천해야 한다. 

 관련법도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일명 ‘산안법’)이 제정된 지 약 40년이 흘렀다. 우리나라 산안법은 사회적 논의와 검토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 일본의 노동안전위생법을 계수하는 방식으로 제정됐다. 그간 여러 차례 개정을 통해 발전을 거듭했지만, 아직도 체계적 정합성과 내용적 정교성 등의 측면에서 개선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 어느 나라에서든 산업안전 관련법은 그 성격상 복잡하고 방대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정치권과 정부 당국자들이 산업현장 전문가들 및 법률전문가들과 긴밀하게 협업(collaboration)해야 좋은 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편 법을 엄정하게 집행·적용해야 하는데, 검찰·법원이 산재 책임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 안 된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우리나라가 비교적 잘 대처해 온 것을 두고 마치 선진국이 다 된 것처럼 자부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처구니없는 원인으로 발생하는 ‘후진국형 산재’ 발생을 대폭 감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근로자에게 ‘일하다가 죽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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