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1883년 1월 오랜 교섭 끝에 인천 개항이 허용되자 곧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조계(租界) 설정에 착수했다. 인천에 가장 먼저 상륙한 일본은 인천 개항 이전부터 이미 해안선에 제방을 쌓고 돌과 흙으로 성토해 평탄지를 만들어 선착장, 부두, 도로시설 및 택지조성 등을 계획했다. 이해 9월 일본은 조선 정부의 호의적인 제의를 사절하고 부산 36만3천㎡(11만 평), 원산 29.9만㎡(9만 평)보다 훨씬 협소한 현재의 자유공원 남쪽 관동 1, 2가와 중앙동 1, 2가의 2만3천㎡(7천여 평)를 할애받는 것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실상은 해안에 인접한 요충지역을 장악해 선박의 접안과 운용에 편리를 도모하고자 했던 것으로, 조선과 맺은 ‘조약’에는 일본 조계지가 다 찰 경우 조선 정부에서 영역을 확장해 줘야 했고 또한 각국 사람들이 거류하는 조계에는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일본상인들도 마음대로 거주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었다. 이렇게 설정된 일본조계는 곧 새로 도항하는 일본 상인을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부족현상을 나타냈다. 때문에 조약에 의거 조선 정부는 당시 일본조계 동쪽 지금의 관동 1가 부지 1만2천여㎡(3천800평)를 추가로 제공했다. 

 이즈음 1884년 4월 일본조계 서편에 1만6천500여㎡(5천 평)의 청국조계가 설정되고, 이해 10월 일본조계 동편과 후면 일대에 46만2천㎡(14만 평)의 각국 공동조계가 형성됨에 따라 일본조계는 이들에 의해 포위된 형상이 됐다. 이제 일본은 원래의 일본 조계지에서 떨어진 곳에 새로운 조계지를 설정하거나 일본조계 앞 해면을 매립해 조계를 확장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됐던 것이다. 인천 개항 당시 75가구 348명이던 일본인 인구는 5년 뒤 1888년에 이르면 155가구 1천359명으로 급등했고, 그에 따라 상점이 늘어남으로써 이들 상당수는 인근의 외국인 조계에 유입돼 고액의 지대(地代)와 집세를 지불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1887년부터 일본조계 앞 갯벌 매립이 대두됐으나 일본 세력 확장과 자국 상인의 임대 수익 감소를 원치 않은 서구 열강의 반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국조계를 일본조계로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불발됐던 반면 청일전쟁 전 2천500명을 넘지 못하던 일본인 수는 전쟁 후 4천 명 이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일본 조계지는 또다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자연히 일본인들은 주변의 조선인 거주지로도 흘러가게 됐다. 

 1895년 10월 국모시해 사건이 발생하고 다음 해 2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이른바 아관파천이 단행되면서 1897년 3월 미국인 모스는 1년 내 기공을 조건으로 경인철도부설권을 획득했다. 최초 인천역 부지로 계획된 곳은 현재 해안동 일대였지만, 이 지역에 토지를 가진 일본인 지주들의 높은 땅값 요구로 무산되면서 영국 영사관 북쪽 일대의 해면 갯벌을 매립해 인천역을 세우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때부터 항동 일대 4만7천603㎡(1만4천여 평)을 메운 뒤 경인철도 인천역을 건설했다.

 인천역 부지 매립을 시작으로 갯벌 매립은 하나의 사업이 됐다. 일본거류민회에 의해 재추진된 매립 사업은 10여 년이 지난 1897년 새로운 매립지에 미곡창고 이외 일체의 점포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은 채 신동공사(紳董公社, 각국거류지자치회)로부터 사업 승인을 얻게 됐다. 이어 1898년 10월부터 공사에 착공해 1899년 5월 말 준공했는데 현재의 중구청 앞 해안동 1~2가에 해당되는 지점이다. 매립지는 길이 258m, 폭 57m, 면적 1만4천700㎡(4천여 평)로 비주거용지였으나 물량장 사용료와 창고 임대료를 받았는데 그 자체로 고수익을 남기는 사업이었다. 

 인천 개항장에서 시작된 매립은 1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시기반 시설과 산업시설 등의 필요성으로 인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고 송도, 청라, 영종 등 경제자유구역의 기반이 됐다. 그러나 해양매립 역시 오늘날 원도심 개발과 같이, 종종 오염과 해양 생태계 교란과 같은 복잡하고 예상하지 못한 보이지 않는 오류와 위험도 수반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