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진정되고 있어 참으로 기쁩니다. 관계 당국의 노력과 의료진의 헌신,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과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가 이룬 쾌거라 더더욱 자랑스럽습니다. 어쩌면 모처럼 우리의 태도와 성과가 세계적인 모델로 인식된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몇 년 전에 출판된 황상민 교수가 쓴 「한국인의 심리 코드」라는 책에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낮다는 글이 있습니다. 책에 따르면,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무척 행복하다’라고 답한 비율은 브라질이 57%인데 비해 우리는 7%에 불과했고,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라고 답한 사람은 미국인이 11%인데 비해 우리는 37%나 됐다고 합니다. 특히 이 글에서 흥미롭게 본 것은, 한국인의 행복 조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이었습니다. "빌 게이츠와 달라이 라마, 오바마 대통령, 앤젤리나 졸리와 ‘나’ 중에서 누가 가장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한국인의 29.4%가 ‘빌 게이츠’라고 답했습니다. 

 반면에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에서는 40%가 ‘나 자신’이라고 답했다고 하니, 행복에 대한 척도가 나라마다 무척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일리노이주립대의 에드 디너 심리학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한국인은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해 타인을 이기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여긴다. 이는 ‘비교’와 ‘경쟁심’이 한국인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그럴까라는 의구심도 듭니다. 비율은 조금 다를지라도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누군가와 비교하고 누군가와 경쟁해야 한다면 불행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에는 사람들은 쉽게 ‘불쌍한 나, 운 좋은 그들’이라고 여긴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이지요. 그의 말을 잠시 빌리면 이렇습니다. "독신자가 기혼자를 부러워하고, 기혼자는 독신자를 부러워한다. 결혼할 때 우리는 단지 ‘혼자 사는 사람의 고통’을 ‘기혼자의 고통’과 바꾼 거다. 그러다가 이혼했을 때는 단지 ‘기혼자의 고통’을 ‘독신자의 고통’과 바꾼 거다. 불쌍한 나, 운 좋은 그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게 돼 있는 게 삶입니다. 다만 잃은 것에 상심이 너무 크면 상실로부터 얻게 될 무언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든 창조는 엄청난 상실과 실패의 아픔을 겪은 후에 이뤄집니다. 얻게 될 그것을 찾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내’ 것이 되면, 결혼해도 행복할 것이고, 독신으로 살아도 행복할 겁니다. 

 「바보 되어주기」라는 책에 나온 글이 위안이 돼줍니다.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람이 현자를 찾아와 "저에겐 희망이 없습니다. 사업 실패로 전 재산을 잃고, 가족은 길바닥에 나앉았습니다"라고 하자, 현자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당신 몸은 아직 건강한가요?" 

 "네. 건강합니다."

 "그럼, 가족과 친구들은요?"

 "아내와 두 아들이 있습니다. 물론 저를 걱정해주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러자 현자는 "그러면 당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현자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두 딸과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었지만, 희망만은 버리지 않아요. 희망은 누군가 빼앗아 가는 게 아니라, 먼저 스스로가 포기할 때 사라지는 거예요."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이 있기에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특히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각인된 우리 자신에 대한 자긍심은 ‘희망’이 돼주기에 충분할 겁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잃어버린’ 것도 크지만, 그것 때문에 얻은 것은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이 되어 더 큰 성장을 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훨씬 더 높아지리라는 믿음도 가져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우리가요.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