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총선에서 참패한 보수정치의 통합당은 여전히 다른 행성에 살고 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나라가 잘못 가는 걸 막지 못했다"며 사퇴한 황교안 대표, "국민의 선택에 절망했다"는 이석연 공관위원장 대행,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몇몇 낙선자들의 주장에 이르면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김세연 의원이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이고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고 말했던 까닭에 절로 수긍이 간다.

 그들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마치 ‘국민이 멍청해!’라고 선거 결과를 단정한다. 마치 시험 망쳐 놓은 건 자기들인데 채점이 잘못됐다, 출제된 문제가 잘못됐다고 호통치는 형상이다. 

 우선 그들은 쌍팔년도 반공이념 스타일에 푹 젖어 있다. ‘문재인 좌파독재’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도대체 문재인 정부가 좌파라고? 결코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꼴통 보수를 면했을 뿐 진보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좌파라니…. 얼토당토않다. 그리고 독재라니? 유권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세상에 이처럼 어수룩한 독재가 있을 리 없다는 건 실눈만 뜨고 봐도 보인다. 

 그러니까 그들의 주장은 처음부터 틀린 것이었다. ‘조국이냐, 경제냐?’ 하는 김종인 선대본부장은 더 가관이다. 조국은 선량한 권력자도 아니었고, 언행일치는커녕 위장한 사이비일지 몰라도 나라의 명운이 걸린 총선거에서 이 나라 경제와 대비시킬 정도의 인물은 결코 아니다. 

 극우세력, 태극기를 흔들면서 성조기를 휘날리고 심지어는 이스라엘 국기까지 내세우는 극우세력과 영남 지역 중심주의에 매몰된 꼰대 보수들이 저마다 헛발질 잔뜩 하고 나서 국민을 탓하다니 정말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보수정치 세력이라고 하는 통합당 실체는 간단명료하다. 입만 열면 세상을 저주하는 보수 논객, 극우 유튜버들, 유치원법을 막은 사학 한유총, 아스팔트를 지닌 기독교 전광훈 세력, 막말 퍼레이드를 즐긴 차명진 부류들에 대한 국민의 호감도는 이미 막장이다. 그나마 더불어민주당이 싫어서 찍어준 덕분에, 영남의 묻지마 투표 덕분에 헌법 개정 저지선을 그나마 지킨(?) 게 전부다. ‘강남당’, ‘영남당’이지 통합당이란 당명부터 잘못돼 있다는 말이다.

 춘추시대 제나라에 안영이란 인물이 있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이 ‘그를 위해서라면 마부라도 되겠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안영이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권세를 얻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백성을 위해 일했다. 군주에게 조언하기를 ‘정치는 너그럽게’, ‘규제는 없는 듯이’, ‘세금은 가볍게 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그 자신부터 사욕이 없었다. 50여 년 동안 3대에 걸쳐 군주를 보필하며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란 지위에 올랐으나 집 한 칸 변변한 게 없었다. 보다 못한 군주가 안영을 외국에 사신으로 내보내고 나서 그의 집과 이웃집을 합친 널찍한 땅에다 대저택을 지어줬다. 귀국한 안영은 대저택을 허물고 예전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웃들에게 사죄했다. 그리고 말했다. "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부를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안영이 대저택이나 재물을 경멸한 게 아니다. 그는 인간이 이익 추구하는 일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했고, 다만 지나친 탐욕은 자신을 해칠 뿐이라고 경계했던 것이다. 정도껏 이익을 추구하는 건 올바른 처세로 여겼다. 

 오늘날 보수니 진보니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보수세력은 있으나 제대로 된 보수이념이 없는데 함부로 보수정치 운운해서는 안 된다.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 경전’이라는 1790년의 저작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관습과 전통이 한 세대나 개인의 추상적 이성보다 훨씬 깊은 통찰력을 지닌다고 했다. 인간의 이성을 절대화하고 기존질서를 무차별 파괴했다는 이유는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반대했다. 

 하지만 "변화시킬 수단을 갖지 않는 국가는 보존을 위한 수단도 없는 법"이라며 개혁론을 수용했다. 변화는커녕 오로지 저주와 악담과 막말로 권력을 쥐겠다는 그들이 수도권에서 얻은 의석이 딱 알맞은 수준이라는 냉혹한 증거는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정의롭고 따뜻한 보수이념’으로 국민을 위한 길을 걷지 않는다면 천하에 그 누가 비대위원장 이 된들 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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