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최근 인천 민주화 역사에 획을 긋는 변화가 있었다.  인천 초기 민주화 운동의 웃어른 격인 김병상 몬시뇰이 88세의 일기로 돌아가신 것이다. 이 일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인천 민주화운동에 대한 세대 교체를 알리는 일이고 지역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 민주화운동은 해방 이후 경제 개발 초기에 불가피했던 독재체제에 반발해 나타난 민권 운동이자 정치탄압에 대한 항거였다. 정치 측면에서는 탄압에 대한 저항을, 경제 측면에서는 인권에 대한 주장을 중심으로 운동을 이어갔다. 정치적인 저항을 제외하면 영국 산업혁명 이후에 나타난 사회주의 운동이나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에 나타났던 민권운동들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 산업개발 중심에 있었던 인천은 인권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 항구와 수도권의 풍부한 인적자원을 배경으로 당시 국가 수출주도 정책에 따라 기업들이 크게 발전했다. 결국 산업화 초기에 흔히 볼 수 있는 낮은 임금과 열악한 일터 환경이 문제가 됐고 당연히 노동자에 대한 인권 운동이 다른 지역보다 특히 많았던 것이다. 70년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영등포 YH사건이나 인천의 동일방직 사건은 아직도 큰 상처로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이렇듯 인천 민주화운동은 다양하게 전개되지만 그 정점은 인천대학교의 시립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인천대학교는 백인엽 장군의 편파적인 대학 운영으로 대학 구성원들과 상당한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인천의 민주화 세력과 대학 구성원들이 함께 일어나 대학 시립화에 성공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운동은 그 당시에 절실했고 또한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사회 민주화가 상당할 정도로 진전돼 시민의식이 올라왔고 인권을 대변할 수 있는 기관들이 이미 상당수 나타났다. 익숙한 민노총이나 경실련을 비롯해 인권 및 시민 단체가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이다. 민주 정권의 등장으로 이렇다 할 이슈도 별로 없는 만큼 민주화운동은 시민운동으로서 환경, 경제, 문화 등 다양한 형태로 세분화 그리고 전문화돼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시민운동의 변화가 필요할 때이다. 시대가 산업화 사회에서 첨단 기술사회로 변했기 때문이다. 명백히 첨단 기술 발전은 우리의 삶과 사고방식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까지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다. 요즘 흔한 휴대전화 없이는 은행 계좌 만들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첨단기기를 활용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어렵다. 이처럼 첨단기술 활용 능력이 힘이 된 지 오래고 이러한 능력에 따라 약자와 강자가 형성되는 새로운 세상이 된 것이다. 

특히 기술 발전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공장자동화가 급속하게 진행돼 있어 이제 기업은 사람이 필요 없게 됐다. 사실 노동자가 없는 기업에 무슨 노동쟁의나 인권 주장이 필요하겠는가. 이러한 정보화 물결은 경제 전반에 몰아치고 있다.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은행 점포 수가 크게 줄고 있고 오프라인 기업들 역시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고용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때이다. 

최근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예전의 산업화 사회에나 통했던 노동 운동을 아직도 운운하고 있는 것은 시대에 뒤처도 한참 뒤처진 일이다. 그렇다면 운동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이 보편화됨에 따라 사회가 변했다면 여기에 따른 피해자와 약자를 찾아내고 이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고 또한 이로 인한 사회 변화에 대한 이해도 역시 필요하다. 과거처럼 인권이나 노동자 피해가 뚜렷한 시기는 이미 지났기 때문에 첨단 기술사회에 대한 연구와 통찰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첨단시대 시민운동에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인물들이 필요하다. 세계 2차대전을 승전으로 마감한 영국 윈스턴 처칠이 그랬듯 새 시대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한 법이다. 첨단 기술의 자동화 공장을 이해 못하는데 어떻게 새로운 세상의 노동과 인권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시대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자칫 해야 할 일을 못하고 결국 소수 집단의 이익에만 매달리거나 정치 집단화 되기 쉽다. 이처럼 민주화운동의 형태가 변화한다 해도 반드시 민주화 정신만은 지켜내야 한다. 민주화 정신이 우리의 큰 가치인 인권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권력이라도 독선으로 흐른다면 민주화운동은 다시 일어나야 하고 저항해야 할 것이다. 

비록 초창기 민주화 세력이 사라지더라도 그리고 시대가 변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민주화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그들을 기리는 것이고 또한 국가와 인천의 민주화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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