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오늘은 ‘스승의날’입니다. 세월이 꽤 흐른 지금, 저를 가르쳐주신 몇 분의 선생님들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고마움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나마 죄를 덜 짓고 살 수 있었던 데에는 그분들의 헌신이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책에 미국의 어느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심한 화상을 입고 생사기로를 헤매는 10대 초반의 소년에게 처음 자원봉사자로 온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소년의 기록을 보고 나이를 확인한 다음, 중2 과정의 영어 문법의 동사 변화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소년이 알아듣는지 알아듣지 못하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순진한 대학생은 며칠 동안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회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정을 이미 받은 소년의 상태가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한 겁니다. 2주 정도 지나면서 위험한 고비를 넘겼고, 정상으로 회복돼가는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소년의 가족과 의료진 모두 놀랐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회복 원인이 궁금해졌습니다.

기다리던 붕대를 드디어 푸는 날이 왔습니다. 소년이 말했습니다.

"사실 저도 가망이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형이 와서는 다음 학기 영어 시간에 배울 동사 변화를 가르쳐주지 않겠어요? 처음엔 저도 시큰둥했어요. 그런데 형이 ‘네가 나아서 학교에 돌아갈 때쯤엔 이것들을 알아둬야 해. 그래야 학과 진도에 뒤떨어지지 않는 거야’ 하는 거예요. 그때 저는 확신했죠. ‘아, 의사 선생님들이 내가 나을 수 있다고 판단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나에게 다음 학기 동사 변화를 가르쳐줄 리가 없지.’ 그때부터 마음이 기쁘고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대학생인 선생님의 사랑과 헌신이 이미 자신은 죽을 거라고 절망하고 있던 소년을 기어코 살려냈습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도 훌륭한 선생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가 과제를 냈습니다. 볼티모어의 빈민가에 가서 그곳에 사는 청소년 200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하는 일이었습니다. 조사 후,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조사한 청소년들의 미래에 대한 평가서를 썼는데, 평가서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아이들에겐 전혀 미래가 없다.’

그로부터 25년 후, 다른 사회학과 교수가 우연이 이 조사서를 접하고는 대학생들에게 그때 그 청소년들이 25년이 지난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추적 조사하라는 과제를 냈습니다. 

조사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사망했거나 이사를 간 20명을 제외한 나머지 180명 중 176명이 매우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겁니다. 직업도 변호사, 의사, 사업가 등 상류층으로 말입니다.

교수는 그들을 한 사람씩 만나 성공비결을 물었더니, 대답은 한결같이 어느 여교사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여교사를 만나 "어떤 방법으로 가르쳤는지?"를 물었습니다. 여교사의 답은 이랬습니다.

"정말 간단한 일이었어요. 난 그 아이들을 그냥 사랑했답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그냥 사랑한 것일 뿐이지만, 그 사랑은 그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지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누군가의 사랑을 먹으며 자라납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지은 글이 가슴을 울립니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다. (…)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이 우산이 돼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에게 우산이 돼주고 계신 이 땅의 선생님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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