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총장(직무대행)
이선신 농협대학교 총장(직무대행)

1980년 5월 18일 신군부의 만행적 폭압과 정치적 음모에 대해 거세게 저항했던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한 지 어언 40년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이 몰라보게 발전하고 변화됐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그것은 시민 대학살의 책임자 색출과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일이다.

책임 있는 지위에 있었던 자들의 사과조차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을 두고 역사 인식의 격차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잔존해 있다.

‘폭동’, ‘북한군 개입’ 등 허무맹랑한 주장들을 펼치면서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하는 댓글을 수천 건씩 상습적으로 달아 온 사례도 있다. 관련자들이 대법원에서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곡·폄훼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법부 판결마저 무시하는 반민주주의적, 반법치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참 어이가 없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은 한국에 5·18 민주화운동 관련 미측 추가 비밀 해제 기록물 사본을 전달했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외교 경로를 통해 미국에 관련 문서의 비밀 해제 검토를 공식 요청했었는데 그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번에 추가 비밀 해제된 기록물은 총 43건(약 140쪽 분량)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이 자료들이 5·18의 진실과 의미를 오롯이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한편,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1980년 5월 그날을 기록한 시민들의 ‘오월일기’ 기증도 잇따르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들도 5·18의 진실을 지켜내는 데 기여가 될 것이다. 

불과 40년 전에 일어난 일의 역사적 진실이 왜곡·폄훼되는 것을 방치한다면, 또 선량한 시민을 대학살한 책임자로부터 사과조차 받아내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는 일본이 과거 우리에게 저지른 악행에 대해 어떻게 그 책임을 묻고 사과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일본 측이 "자기 나라의 일에 대해서도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사과도 못 받아내면서 타국에 대해 역사적 진실 운운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일이 가당한가?"라면서 코웃음 치지 않겠는가.

진실로 역사를 바로 세워야 민족의 정기가 지켜진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에 계류된 5·18 역사왜곡처벌특별법 제정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동안 이름만 다를 뿐 5·18 왜곡을 처벌하자는 법안은 수차례 발의됐다.

지난해 2월 22일에도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이 모여 관련 법안을 제출했지만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반대로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했고, 공수처법 등에 밀려 패스트트랙 안건에도 상정되지 못했다.

이 법안은 얼마 안 남은 20대 국회 임기와 함께 또다시 자동 폐기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21대 국회가 개회되면 우선적으로 다시 입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8명도 이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5·18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응할 필요는 있지만 형사 처벌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반인도적인 범죄를 옹호하며 다른 집단을 혐오하거나 배제하고 폄하할 수 있는 자유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형식원리를 악용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적(敵)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적 혹은 방어적 장비를 갖추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방어적 민주주의(abwehrbereite Demoktatie) 이론으로서 주로 서독연방헌법재판소 판례를 통해 확립된 것으로, 민주주의의 형식논리를 자신들의 정권 획득과 유지에 이용한 나치스 독재정권이 탄생한 경험을 토대로 서독기본법의 탄생과 더불어 성립됐다.

우리도 방어적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필요한 제도적 기재를 도입해야 한다. 진정한 미래의 통합을 위해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도 5·18역사왜곡처벌법 입법에 흔쾌히 동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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