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5월은 유난히 공휴일이 많은 달이다. 이 날들 중에 쉬는 날은 아니지만 매년 행사를 치르는 스승의날이 있다. 하루를 쉬기는 그렇고 그렇다고 없애자니 좀 찜찜해서 명칭만 그대로 둔 듯하다.  그래도 이 날을 남겨 둔 것은 스승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승은 인간의 도리(道理)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힘껏 부르는 스승의날 노래가사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이처럼 스승은 지식뿐 아니라 생각하는 법 그리고 사람으로 지켜야 하는 도리 등 우리가 사회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래서 스승은 이미 상대방 호칭으로 되어 버린 ‘선생’과는 다르게 아직 존경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스승은 인류가 집단생활을 영위할 때부터 필요했고 등장했다. 이들은 생각을 만들고 제자를 만들어 가르쳤다. 이들 중에 삶의 정도(正道)를 가르친 이가 예수나 석가와 같은 종교가들이고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 이가 바로 공자나 플라톤과 같은 사상가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라고 부르는 것일 것이다. 한결 같이 이들은 스승으로서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더 나은 세계관을 갖도록 삶을 가르쳤던 것이다.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스승의 개념도 분화하게 된다. 스승의 역할이 ‘지식전달’과 ‘연구’ 그리고 ‘인간교육’이라고 하면 앞의 두 기능은 연구소나 각종 교육기관과 같이 전문화되어 대체돼 왔다. 다만 마지막 기능인 ‘인간교육’이라는 것이 매우 추상적이고 사람마다 서로 다른 가치를 수반하기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것이다. 

인간 교육이라는 것이 전문가나 첨단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 현실을 들여다보면 더욱 암울하다. 일전에 강의 중 대학생의 태도가 어수선해 중·고등학교 선생님을 탓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오히려 초등학교 선생님을 탓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에서 그렇게 교육을 받아온 것을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집에서부터 ‘인간 교육’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학교에서 교육을 할 수 있냐고 도리어 반문한다. 결국 사회가 학교 선생님을 스승이 아니라 지식 기능인으로 보는 탓이다. 이런 상황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은 그야말로 학문적 훈련이 목적이다 보니 세세한 인격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집과 학교 어디에서든 학생들은 인간 교육이 결여된 단지 ‘기능성 인간’으로 사육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다가 사회에 붙들려 나가면 소위 ‘인간 교육’은 그야말로 먼 얘기가 된다. 이들 중 누군가 교단에 선다 해도 그에게 인격적 스승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까지 그도 그런 스승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 정치 지향적 교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잘못을 하고도 떳떳한 것을 보면 스승이라고 해서 모두가 스승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그 교수도 교수다운 교수를 제대로 접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이 스승 자리에 있어도 스승의 역할을 깨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법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데 하고 오히려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스승의 의미를 인격적으로 보지 않고 법의 잣대로만 본 탓이다. 

이렇듯 사회의 정의를 말할 때 스승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잘못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규범 그리고 그것에 기인한 양심에 의해 판단돼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구조를 만드는 것이 바로 그의 스승이고 스승이 이끄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의 미래에는 스승의 역할이 더욱 적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교육은 ‘인강’으로 대신할 것이고 유튜브가 모든 질문을 대신할 것이다. 필요한 인격교육도 첨단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고자 할 텐데 과연 ‘인간 교육’이 필요할 것인지 의문이다. 

어쩌면 ‘인간교육’이라는 것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스승의 자리는 점차 엷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승을 잃어버린 사회는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이고 그야말로 본능만이 지배하는 사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참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스승을 다시 세워야 한다. 스승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지식과 더불어 인격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스승을 따르는 사람은 지혜뿐만 아니라 스승의 인간됨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만이 스승은 더욱 스승다워지고 제자는 제자다워져 세상은 옛 스승들이 원했던 것처럼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회를 이끌고 가는 사람, 그런 스승이 되는 길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라져 가고 있는 스승의 얼을 살리고 다시금 일깨우기 위해 우리는 특별히 날(日)을 세워 기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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