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이었던 고 최희석(59)씨를 폭행하고 갑질한 혐의를 받는 서울 모 아파트 입주민 A(49)씨가 지난 22일 구속됐다. 현재까지 보도된 바로는 A씨의 지속적인 폭행과 협박,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에는 부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고인의 업무수첩에 ‘공갈협박, 잦은 비하 발언, 빈정댐, 여성 소장 비하…’ 등의 문구가 적혀 있는 것으로 봐서 이 역시 주민 갑질에 의한 피해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일에는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기사와 이를 도와주던 동생이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잠시 마스크를 벗은 게 시비·폭행의 발단이라고 하는데, 여러 정황상 주민 갑질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모두 아파트 입주민이 가해자인 사건이다. ‘갑질 입주민 처벌’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한 일상이 됐다. 갑질은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행위’다. 권력의 비대칭 관계에서 ‘을’이 자신의 기본적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갑’의 자의적 간섭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번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은 (잘못 흘러갈 경우) 자신의 ‘고용유지 또는 생계수단’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했기에 가해자의 인격적 모독과 폭력을 감수했을 것이다. 문제를 제기해봤자 바뀔 게 없고, 오히려 그 이후 보복이 더 감당하기 어려웠을 테니 참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건 갑질을 처벌할 법적 근거도 없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사업장 내 사용자와 근로자로(법 적용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법’의 관점에서 좀 더 폭넓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책임 범주를 ‘사용자에서 이해관계자 및 제3자로’까지 확대해야 임시직과 계약직, 하청·파견직 같은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갑질은 한 나라의 민주적 규범을 약화시키고, 공동체 구성원 간 불신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척결해야만 할 사회적 병폐다. 갑질과 폭력으로부터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의 틀’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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