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라이벌 롯데 최동원(좌)과 선동렬
영원한 라이벌 롯데 최동원(좌)과 선동렬/온라인커뮤니티

[기호일보=디지털뉴스부]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하면 故 최동원과 선동렬 전 국가대표 감독을 꼽을 수 있다.

부산광역시 출신인 최동원과 광주광역시 출신 선동렬은 각각 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는 투수였다.

특히, 최동원은 경남고를 거쳐 연세대를 나왔고, 선동렬은 광주일고를 거쳐 고려대를 졸업해 연고 라이벌이었으며, 구질도 달라 최동원은 커브볼을, 선동렬은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았다.

영남과 호남, 동과 서, 영원한 라이벌인 최동원과 선동렬은 선발로 3번을 만나 1승 1무 1패로 동률이다.

온라인커뮤니티와 위키트리 등에 따르면, 첫 맞대결은 1986년 4월 19일 사직 야구장에서 있었다.

전성기 시절의 롯데 최동원
전성기 시절의 최동원/온라인커뮤니티

당시 12연승을 달리던 롯데 최동원이 3회 송일섭에게 선제 솔로홈런을 내주면서 1실점. 그리고 그것이 결승점이었다. 해태 선동렬은 데뷔 이후 첫 완봉승이었고 최동원은 완투패로 12연승을 마감해야 했다.

두 번째 맞대결은 1986년 8월 19일 역시 사직 구장에서 벌어졌다.

시작부터 불안했던 해태 선동렬은 1회 선두타자 정학수를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를 시켰고 2번타자 조성옥은 보내기 번트를 시도, 홍문종이 내야 안타를 치며 1사 1,3루의 상황. 이때 홍문종이 기습 도루를 시도하면서 해태 포수 김무종의 송구를 해태 2루수 차영화가 놓치며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3루주자 정학수가 득점을 성공, 1점을 내주었다. 이어 김용철의 우전 안타를 기록하며 2:0으로 끝이 났다.

마지막 세 번째 대결은 1987년 5월 16일, 이번에도 사직구장이었다.

선동렬/온라인커뮤니티
전성기 시절의 선동렬/온라인커뮤니티

이 대회는 무려 연장 15회까지 가고도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서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히며 이 마지막 승부를 주제로 만든 영화가 ‘퍼펙트 게임’이라고 한다.

이 경기에서 롯데 최동원의 투구수는 209, 해태 선동렬의 투구수는 232개로 선동렬의 투구수는 여전히 한 경기 최다 투구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이 둘의 선발 대결은 모두 사직구장에서 벌어졌고, 모두 완투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기가 끝난 후 최동원이 선동렬의 손을 맞잡으며 "동렬아, 우리 끝날 때까지 함 던지볼까?"라고 묻자 선동렬이 "형님, 한번 해 볼까요?"라고 웃음지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세 차례의 경기 이후 최동원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오랜 기간 누적된 혹사로 인한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으며 1989년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 된 후 1991년 은퇴를 했고 반대로 선동열은 무려 0점대의 시즌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내다 1996년 초 일본으로 진출했고 1999년 은퇴하게 됐다.

전성기 시절 두 사람의 최고구속에 대한 관심도 많았었다.

최동원의 공식적인 최고구속은 1981년 메이저리그 스카우터가 측정한 155km/h이다. 하지만 1978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시속 159km을 기록했다는 말이 있다. 1980년대 프로야구는 스피드건이 귀했던지라 프로 시절 최동원의 최고구속은 기록돼 있지 않으며, 프로시절 최고구속은 150km/h 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선동렬의 최고 구속은 대학시절이던 1982년 9월 15일 기록한 156km/h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일본 측 기록으로 존재한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최고구속은 147km/h로 알려져 있으며 대학입학후 체중증가와 함께 구속이 상승해 대학 2학년 때 155km/h 구속에 도달했다고 한다. KBO에서는 1995년 7월 25일 기록한 155km/h이 최고구속이며, 선발 경기에서는 1991년 6월 14일 기록한 154km/h이 최고구속이다. NPB에서는 1997년 7월 6일 기록한 154km/h이 최고구속이다. 평속의 경우 1980년대는 구속 자료가 미비해 추정이 힘들고 마무리 시절에는 140km/h 중후반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구속에 대해 논란이 있긴 하나 1990년대 들어서야 스피드건이 보편화 됐기에 이전의 구속 자료는 찾기가 어렵다.

최동원은 이후 2010년부터 지병인 대장암이 재발해 경기도 포천 등에서 요양하던 중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돼 일산의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2011년 9월 14일 새벽 2시 2분, 향년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앞서 서적 ‘프로야구 퍼펙트가이드 2020’이 발간되며 최동원, 선동열, 박찬호, 류현진의 비교 분석 칼럼, 프로야구 판도 및 개인상 예상, 도쿄 올림픽 예상 등 팬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사를 더해 두 사람이 재조명 되기도 했다.

이 서적에서 최동원과 선동열이 만약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어느 정도 성적을 거뒀을 지에 대해서도 언급됐는데 최동원은 두 자리 승수에 평균자책점 3점 초반에서 중반대, 선동열은 2점 후반에서 3점 초반대 평균자책점에 두 자리 승수를 거뒀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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