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현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은 스스로를 유폐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인 동물이 이동시키기 때문이다. 세계가 글로벌화돼 물건과 사람의 이동이 자유로워야 할 이때에 누군가 ‘스톱!’을 외친 셈이다. 그동안 글로벌화된 이동 방식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었던가? 자유의 시대에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생활패턴과 사유 방식을 반추해 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도 있을 것이다.

세균, 바이러스와 인간의 공존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인류는 이들의 존재를 알아 왔기에 기침이나 동물의 분비물을 혐오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역병을 막아내려는 인간의 노력은 과학을 발전시켰고, 특히 의학 발전은 건강한 삶과 수명을 연장시켜 놓았다. 전쟁, 질병, 기아를 극복해 왔던 호모사피엔스는 이제 신의 위치를 넘보는 호모데우스가 되려 한다고 유발 하라리는 인류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구상의 종(種)중에서 호모사피엔스만큼 77억 명이 넘는 종으로 발전한 동물은 없다. 각 나라의 신화에는 역병을 물리치려는 인간의 고통이 묘사돼 있다. 중세를 거치면서 인류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환경과 거주공간 위생을 대폭 개선해야 했다. 런던이나 파리의 하수구는 이들을 막아내려는 위생의식의 소산이다. 거대도시를 건설하며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인간을 더욱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현재 우리가 부닥친 코로나19라는 난제(難題)를 해결하기 위해 두려움 속에서 황급히 내려야 하는 결정은 어쩌면 우리 문화 속에 잘못된 형태로 오래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유발하라리는 말하고 있다. 휴대전화로 사람들의 행선지가 쉽게 밝혀질 수 있는 지금, 이것을 이용해 코로나19 전파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지만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음을 그는 경고한 셈이다. 

글로벌화된 자본주의는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대에 맞지 않으니 계획경제인 공산주의가 리부팅돼야 한다고 슬라보예 지젝은 좌파학자의 눈빛을 드러낸다. 독일 베를린예술대학교 한병철 교수(「피로사회」 저자)는 지젝과 다른 입장을 견지한다. 코로나19가 인류 정치체제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코로나19 이후의 삶은 그 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이 자연과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는 일치했다. 가깝게는 19세기 미국에서 초월주의( transcendentalism)를 창시했던 에머슨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만물에는 영혼이 있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의 시를 썼다. 그의 생각은 제자 소로우에게 전달돼 자연과 조화와 균형의 삶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 「월든(Walden)」이라는 책을 남겨 놓고 있다. 현대인이 「월든」의 삶의 방식으로 모두 돌아갈 수 없겠지만, 유사한 삶의 방식을 택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속에서 지친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그곳이기 때문이다. 경쟁은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확연한 변화는 교육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식 전달 중심의 교과목 교육 방식은 비대면 방법으로 이동되고 있다. 아날로그적 컬리큘럼과 교육 방식, 19세기식 교육 환경은 ‘미네르바 스쿨’과 같은 형태의 교육시스템에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비대면 방식으로 인해 교육 내용이 모두 공개되는 시대에 강의 품질이 높지 못한 강좌들은 설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미 ‘K-MOOC’와 같은 디지털 강의가 대학의 학점으로 연동돼 있다. 대학들은 학생들이 취업해 먹고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의 방점을 두고 있다. 미국에서도 그렇지 못한 대학은 이미 문을 닫고 있는 중이다. 

전쟁도 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시대에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코로나19’, 너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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