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 인천지방행정동우회 부회장
이광호 인천지방행정동우회 부회장

요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살기 힘들다고들 말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상에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라 하여 각종 행사와 모임 등이 취소되고 간격을 1m씩 두고 생활하자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이름하여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으로도 안보가 위태롭고 경제가 어려워 모두들  살기 힘들다고 하며 어쩌면 IMF 때보다도 더 혹독한 시련기가 올 것 같다고 걱정들을 한다. 한마디로 살아갈 희망이 없어 보인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군 세종대왕이시라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세종실록을 읽어보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됐다. 특히, 공직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다양한 세종의 인재경영, 훈민정음 등 문화창달, 해시계, 물시계 등 과학기술, 북방영토 개척 등 수 많은 치적 중에서도 인재경영에 대한 관심을 갖고 알아보게 됐다.

# 인재를 내 몸같이

세종대왕의 인재경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국왕의 인재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리더가 어떤 인재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인재를 범재로 취급하기도 하고, 범재로 보이는 사람 속의 강점을 발견해 인재로 키워낼 수도 있으니까. 

세종의 인재관을 볼 수 있는 책은, 세종시대 편찬된 「치평요람」이 있다. 실제로 세종의 인재쓰기를 보면 「치평요람」의 인재론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세종의 인재쓰기에 대해 율곡 이이는 130여 년 뒤에 이렇게 말 했다. "세종대왕은 사람을 쓰되 자기 몸과 같이 했다. 현인과 재능 있는 이를 쓰되 그 부류를 따지지 않았다. 임용하고 말을 채택함에 오롯이 하여 참소와 이간질이 들어갈 수 없었다. 또 지위가 그 재능에 합당하면 종신토록 바꾸지 않았다." 「율곡전서」

율곡의 이 말에는 세종의 인재경영의 요체가 잘 정리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인재를 귀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자기 몸과 같이 했다"는 것은 신하들을 세심히 보살피고 존중해서 각자가 주인의식을 갖고 맡은 일에 열과 성을 다하도록 했다는 말이다. 둘째는 사람의 신분이 아니라 덕망과 재능을 우선해 인재를 발탁한 점이다. 천민신분 장영실을 종3품의 대호군까지 승진시킨 사실이나, 아버지는 강릉군수이나 어머니가 천인이었던 황희를 정승으로 임용한 경우가 그 예이다. 셋째는 사람을 뽑고 그들의 말을 들을 때 오롯이 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께서는 실제로 일단 인재로 선발된 사람의 말을 경청했다. 그 사람의 말을 집중해서 들음으로써 참소와 이간질이 들어갈 수 없게 했다. 넷째로 그 사람의 재능이 그 자리에 적합하면 종신토록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희 정승 24년, 맹사성 8년씩 장기간에 정승을 지냈고, 재상들은 평균 6.8년간 재직해 임무를 완수해 내게 했다. 

첫째, 세종은 인재를 뽑을 때 마음 바탕이 착한가를 살폈다. "착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처음엔 꿈뜨고 실수하기도 하지만, 그는 오래 갈수록 더욱 조심하여 책무를 완수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인재선발에서 눈여겨볼 것은 그 사람의 마음 바탕, 즉 자기 개인보다는 공동체 전체를 우선시하는지 여부이다. 아울러 세종대왕께서는 처음에 인재를 선발할 때 마음속에 열정이 있는지를 봤다. "사람들은 처음에 부지런하다가도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 열성적으로 일하다가도 끝을 완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처음부터 열을 내지 않는 자일까 보냐" 「세종실록」

둘째, 집현전이나 성균관 같은 양성기관에서 인재를 길러낸 것이다. 집현전은 세종2년(1420년)에 설치돼 세조2년(1456년)에 폐지될 때까지 37년간 운영됐으며, 그 사이에 100명 이상 학사와 관원이 배출됐다. 셋째, 세종은 인재들로 하여금 공적으로 허물을 덮게 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장단점이 있는데, 훌륭한 지도자라면 단점보다는 그의 장점을 발견하고 제 위치에 배치해서 그 능력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세종대왕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뇌물혐의로 탄핵을 받은 조말생을 중용해서 북방 영토 경영에 공헌하게 했고 또한 유능한 관료가 잘못을 범했을 경우, 다시 기회를 줘 실수를 만회할 수 있게 했다. 

# 세종시대 정승들의 재직현황

그러면 세종시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정승을 지냈을까? 세종 재위 32년간 정승을 역임한 사람은 총 20명이다. 그들 대부분은 황희나 맹사성처럼 장기간 또는 수년씩 정승으로서 세종정치를 보좌했다. 흥미로운 점은 세종치세의 가장 전성기에는 바로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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