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태 섬마을 선생님 연구회 운영위원
이영태 섬마을 선생님 연구회 운영위원

매일 보건 당국에서 역질 확진자 수치를 발표하고 있다. 수치가 줄었다가 늘어나는 일이 계속됨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도 이완과 긴장의 연속이다. 긴장의 정도도 다소 느슨해짐에 따라 역질이 확산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역질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방법은 감염 추정자의 자기 고백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그것이 큰 사달으로 이어졌다는 보도이다.

역질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만큼 개개인이 긴장의 끈을 동여맬 수밖에 없다. 

"그 물 한 방울을 현미경 밑에 놓고 보거드면 그득한 것이 버러지 같은 생물인데 그 생물 까닭에 대개 열 사람이면 아홉은 체증이 있다던지 설사를 한다던지 학질을 앓는다던지 무슨 병이 있던지 성한 사람은 별양 없고……"‘독립신문’ 1897년 9월 2일자, 논설.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서재필이 박테리아에 대해 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버러지 같은 생물’이 인간들에게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 한다.

그는 현미경을 통해 ‘버러지 같은 생물’을 관찰하고 그것의 전염 경로에 대해서도 운운하고 있다. "무슨 병이던지 100명에 99명은 이 생물 까닭에 병이 생기는 것이요, 이 생물 때문에 병이 전염되어 한 사람이 병을 앓게 되면 그 생물이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서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라며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독립신문’ 1897년 7월 22일자.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처럼 눈으로 확인 가능한 것이야말로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기에 장문의 글을 작성했던 것이다. 

서재필이 논설을 발표한 지 약 120년이 지났다. ‘버러지 같은 생물’이 모든 나라에 창궐하고 있다. 치료제가 등장하지 않는 한 역질을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활방역을 충실히 실천하는 길뿐이다. 120년 전에도 ‘버러지 같은 생물’에 노출되지 않는 방법이 생활방역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질병에 대한 옛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자전류(類)를 살펴봤다. 먼저 병(病)이라는 글자는 병들다[疒]와 눕다[丙]가 결합된 글자이다. 병들다[疒]는 아픈 사람이 침대에 누워서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기에 역(疒 )과 결합된 글자는 모두 질병의 증상을 나타낸다. 역질(疫疾), 학질(瘧疾) 등이 그것이다. 역질 환자들이 병상에서 병마와 싸우며 땀 흘리고 있는 모습을 연상하면 병(病)이란 글자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진 모습도 글자 풀이의 대상이다. 의원 의(醫)는 상자[匚]와 화살[矢]이, 몽둥이[殳]와 술항아리[酉]가 결합된 글자이다. 상자[匚]와 화살[矢]이 결합된 의(医)는 몸에서 뽑아낸 화살촉을 상자에 담아둔 것이거나 화살촉처럼 날카로운 외과수술용 도구가 상자 안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의료진의 행위를 몽둥이[殳]로, 환자를 마취하거나 상처를 소독하는 것을 술항아리[酉]로 나타내고 있다. 예컨대 나관중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가 독화살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고통 없이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을 연상하면, 의(醫)라는 글자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때 상처의 살을 찢고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했던 자가 바로 신의(神醫)로 소문난 화타(華陀)였다. 

‘버러지 같은 생물’이 지닌 전염성을 두루 알리고 의료 현장에 있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자 이것저것 들춰내봤다.

마음이 이완되기 쉬운 때라 하더라도 병상에 누워 땀 흘리고 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연상해 본다면, 생활방역과 관련해 긴장의 끈을 굳게 동여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