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고3 때는 대학만 가면, 혼자일 때는 짝만 만나면 행복할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힘겨운 일은 늘 숨어있다가 때가 되면 불쑥 고개를 내밉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아픔도 쌓여만 갑니다. 그것들은 고스란히 주름 속에 담깁니다. 그렇다고 주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주름 속에 담긴 지혜야말로 상처와 슬픔이 준 선물일 테니까요. 그래도 살 만한 것은 아픔과 아픔 사이에 기쁜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삶은 이렇게 기쁨과 아픔,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가며 영글어 갑니다. 삶이 기쁨과 아픔으로 이뤄져 있다면,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요? 고통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희망의 씨앗이 되게 하려면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정호승 시인은 「울지 말고 꽃을 보라」에서 이렇게 고통의 의미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른 봄에 농부가 아들에게 가을보리를 심으라고 하자 아들은 정성을 다해 키웠습니다. 그러나 수확기가 되자 정작 보리가 패지 않았습니다. 놀란 아들에게 농부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가을보리를 봄에 심으면 절대 열매를 맺지 않는다. 가을보리는 가을에 심어 혹독한 겨울의 눈보라를 견디며 자라게 해야 이듬해 봄에 튼튼한 보리로 자라 알찬 열매를 맺는단다. (…) 고통이 없는 온실과도 같은 평화는 오히려 가을보리에게는 절망이고 죽음이다. 이제 네 인생의 고통을 피하려 들지 말아라."

고통이 없는 삶은 ‘쭉정이’가 되지만, 고통과 마주한 삶은 ‘알곡’이 되어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고통을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마주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견뎌내야 합니다.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시인 루머의 글을 빌려 힘겨워하는 우리를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슬픔은 기쁨을 위해 그대를 준비시킨다. 슬픔은 난폭하게 그대 집안의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다. 새로운 기쁨이 들어올 공간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은 그대 가슴의 가지에서 변색돼 버린 잎들을 흔든다. 초록의 새잎이 그 자리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은 썩은 뿌리를 잡아 뽑는다. 그 아래 숨겨진 새 뿌리들이 자라날 공간을 갖도록 말이다. 슬픔이 그대의 가슴을 흔들 때마다 훨씬 좋은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슬픔과 고통은 그동안 마음 안을 온통 차지하고 있던 분노와 교만 그리고 이기심과 열등감 등을 모조리 몰아내고, 텅 빈 그곳에 새로운 희망을 맞이할 채비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 힘겨울 때나 슬플 때마다 시인 루머의 말을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상처를 외면하지 마라. 붕대가 감긴 곳을 보라. 빛은 상처 난 곳을 통해 네게 들어온다. 고통은 진정한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만 남는다."

그러려면 지금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되고, 그래야 비로소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넓어질 것이며, 결국 희망 열쇠를 손에 쥐게 될 겁니다.

앞서 소개한 정호승 시인의 책에는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임신 중인 새댁 이야기가 나옵니다. 새댁은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눈물만으로 지냈습니다. 며칠 전에 아들을 낳은 며느리가 늘 다니던 예배당에도 가지 않자, 시아버지가 이유를 물으니, "그이를 일찍 데려간 하느님이 원망스럽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녀를 꽃밭으로 데려가 꺾고 싶은 꽃을 꺾으라고 하자, 그녀는 가장 예쁜 장미꽃을 꺾었습니다. 그때 시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네가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꺾어 꽃병에 꽂듯이, 하느님도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꺾어 천국을 장식한단다. 얘야, 너무 슬퍼 말아라."

이 말에 며느리가 크게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의 죽음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슬픔의 무게는 가벼워질 겁니다. 그리고 어느 날, 누군가가 비슷한 아픔을 겪을 때, 며느리는 좋은 스승이 돼 줄 겁니다. 이런 삶이 쭉정이가 아니라 알곡과도 같은 삶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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