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 전 산업연구원 부원장
심영섭 전 산업연구원 부원장

코로나19 대유행 시대를 거치며 지구촌에서는 국가란 무엇이고, 어떤 국가의 존재가 의미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일고 있다. 이제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가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존재하는 이유를 군사적·경제적 대국이라는 관점에서 찾던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코로나19 대유행 시대를 겪으면서 국력을 배경으로 우쭐거림도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 그건 협박과 위협 수단일 뿐이기에 배척돼야 마땅하고, 오로지 인류의 안전에 공헌하고 경제적 공생과 문화적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평가받고 대접받아야 하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고, 제후국이 될 양이 아니라면 근육질의 국력 과시는 경계해야 할 일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한국이 국가 마케팅의 아주 좋은 기회를 맞이한 듯하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사회적 가치와 힘(K-Social Value & Power)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공공외교를 펼쳐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한 나라의 영향력 강화를 위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지구 공동체의 플러스 섬에 도움이 되는 나라 이미지를 구축할 호기를 잘 활용해야 된다는 의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인식을 바꿀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세계 각국은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걸었다. 국제적 공조나 협력은 안중에 없고, 강대국일수록 볼썽사나운 민낯을 드러내곤 했다. 심지어 ‘마스크 해적’이란 말이 난무할 정도로 험악한 형국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전례 없는 위기국면에서 한국이 보여준 사례는 달랐다. 성숙한 시민사회 모습을 보여줬고, 디지털 선진국답게 기민하고도 체계적으로 대처했으며, 혁신의 아이콘에 걸맞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방역의 길을 찾았다. 

또 이러한 경험을 기꺼이 지구촌에 공유하고자 했다. 바로 이런 점들이 지난 몇 달 한국이 국제사회에 보여준 소프트파워의 진면목이었다. 사실 이 시대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나라를 치자면 단연 한국이 으뜸일 수 있다. 그동안 강대국을 중심으로 공공외교를 통해 자기나라의 가치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인류공영에 이바지한 가치로 치면 한국만한 나라가 없다고 본다. 전쟁의 폐허에서 스스로 경제 발전을 이룩했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변신한 나라,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후발국에 전수하는 일에 열심인 나라가 바로 한국인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를 체계적인 전략으로 구사하지 않았고, 단편적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에 그 가치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의 저자인 페스트라이쉬는 저서에서 전략적으로 한국을 대표하고 한국을 이루는 여러 요소를 묶는 개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 3년 전 북한 핵 위협이 한창 고조됐을 때, 필자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나라가 2004년부터 펼친 지식공유 프로그램(KSP)의 수혜국들이 무려 수십 개국에 달할 터인데, 이들이 나서서 공동으로 성명을 내준다면 어떨까? 한국은 핵무기에 의해 파괴되거나 없어져야 할 나라가 결코 아니라고 말이다. 

‘한국은 스스로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난 경험을 다른 나라와 공유하며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함께 애쓰는 나라’라고 말이다. 아마 유엔의 제재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KSP의 주관 기관이나 이를 지원하는 정부는 주어진 사업에만 몰두할 뿐, 절체절명의 위기를 구할 묘안을 짜내질 못했다. 전략이 없으니 시혜만 베풀어준 꼴이 됐다. 

이제 코로나 난국에서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K-방역’이니 ‘K-oo’니 하는 네이밍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을 한데 묶어 보편적 가치 아래 널리 인류를 이롭게 하는 나라라는 점을 앞세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마침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총·균·쇠’의 저자인 다이아몬드 교수도 코로나19가 세계를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앞으로 공생할 만한 나라로서 한국의 가치를 확산시켜 나가는 공공외교 필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에 보편적 가치를 부여하고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가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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