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과거 민주화운동 세대와 젊은 세대가 교감하며 이 민주주의가 다시는 후퇴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도록 힘쓰고자 합니다."

 최근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으로 선출된 이우재(63)온고재 대표는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인천 5·3 민주항쟁’ 등 숱한 민주화운동 현장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가 되돌아본 5·3 민주항쟁은 인천의 대표 민주화운동이자, 민주화 노력이 특정 계층이 아닌 ‘대중’과 함께 해야 의미를 갖는다는 인식을 다시 한 번 심어 준 계기이기도 하다.

이 이사장이 기억하는 1986년 5월 3일은 유난히 화창하고 더운 날이었다. 당시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집행국장을 맡고 있었던 이 이사장은 "오늘은 잡혀 가면 고문을 당해 평생 불구로 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인천 5·3 민주항쟁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가장 격렬하고 큰 규모의 민주화운동이었다.

 군사독재정권 당시 대학교 3학년생은 무조건 한 달간 군대에 입소해 훈련을 받아야 했는데, 1986년 이를 거부하는 운동이 극렬하게 일어났다. 정권이 이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서울대 김세진·이재호 학생 분신 사건이 발생했고, 학생들은 동료의 죽음에 분노했다. 

 하지만 당시 신민당 이민우 총재가 "일부 학생들의 급진적인 주장은 민주화운동이라고 볼 수 없다"며 정부의 탄압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결국 많은 학생들이 학생 신분을 버리고 거리의 민주화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1980년 광주에서 우리나라 군대가 우리 국민을 총으로 쏴 위협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정말로 총에 맞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후 일어난 민주화운동 주류는 대중과 떨어져 진행됐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1986년 학생과 노동자 등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한 민주화운동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급격히 공유되면서 다시 대중과 함께 하는 5·3 민주항쟁이 일어났고, 이를 계기로 1987년 6월 항쟁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5·3 민주항쟁이지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이 인정하는 민주화운동으로는 등록되지 않은 상태다. 이 이사장은 일부 시각 차이로 5·3 민주항쟁의 의미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전후 상황을 보면 5·3 민주항쟁은 전두환정권이 아닌 신민당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처럼 보이고, 지나치게 운동권 위주로 성급하게 일어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어서다.

 "1986년 5월 3일 시위 이후 당시 정권이 수배자 소재지 파악 등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가면서 부천에서 성고문 사건 등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정권은 5·3 민주항쟁의 의미를 퇴색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급진성과 과격성을 선전했고, 결국 운동세력 내부에서도 자기반성 과정에서 많은 아픔을 겪었죠. 이로 인해 아직 5·3 민주항쟁이 객관적이고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5·3 민주항쟁은 분명 인천시민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개헌 추진 움직임에 신민당이 입장도 하지 못하고 물러나도록 하는 등 적어도 정치권이 전두환 정권과 타협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업회는 과거 인천의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며 보존하고 젊은 세대에 정확히 전달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자 한다. 5·3 민주항쟁의 현장이었던 인천시민회관이나 인천가톨릭회관 등 주요 장소가 보존됐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인 만큼 아직 남아 있는 기억과 장소를 어떻게든 이어가고자 한다. 이제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인천에서 사라지지 않은 곳은 동일방직 자리 정도다. 동일방직 노동자 투쟁은 인천의 대대적인 산업화·공업화 과정에서 곪은 노동자들의 문제를 표출시키고, 노동자들이 영웅적으로 투쟁한 대표적 사건이다.

 "가톨릭회관과 시민회관 등이 사라진 상황에서 추진되는 것이 바로 현재 용역 중인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 설립입니다. 사실 우리만 생각한다면 기념관에 각종 사료나 기록 등을 보관할 정도의 작은 공간과 휴게실 정도만 있으면 되겠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를 젊은 세대에 알리려면 그렇게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념관을 통해 우리 민주주의 역사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라나는 세대가 직접 보고, 우리가 느끼는 자유가 어떤 과정을 통해 자리를 잡아가는지 알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은 민주주의 역사를 사수하고 확대해 나가는 기억 전수의 장으로서 필요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사장은 최근 사회가 변화하면서 과거 민주화운동은 사라져 가고, 환경 등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넓힌 ‘시민운동’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과거 독재 권력과 대립·투쟁했던 시기를 지나 현재 지역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한 움직임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사업회의 중점 과제라는 생각이다. 

 사업회 등 민주화운동 단체를 젊은 세대에게도 개방하고, 서로 생각을 공유하며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각종 기념행사 등 민주화운동 계승사업은 물론 시민이 주체가 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젊은 세대와 함께 고민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우재 이사장은 "인터넷 영상 업로드 등 콘텐츠를 공유하고 남길 방법은 다양한데, 이는 젊은 세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물러가는 세대로서 당시의 기억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과거 민주화운동 주역의 몫이고, 젊은 세대가 이 민주주의를 더 확대시키는 주체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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